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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은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곳 입니다.

정조는 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했는데 평상시에는 유수부 관청으로 사용되었다 합니다.


수원화성은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 4개의 문루로 이어져 있으며,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 되었답니다.

조선 22대 정조는 아버지 사도 세자가 뒤주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자,

그 무덤을 당시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받던 수원으로 이장하였고, 도시와 성곽을 축성했다고 합니다.

 

화성행궁은 수원화성축조가 완공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576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로 완성되었으나,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사라진것을 1996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성행궁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관람시 동선대로 관람하지 않으면 모두 둘러보기 쉽지 않은곳 입니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이렇게 규모가 큰 행궁건축물의 용도를 일일이 기억하기란 쉽지 않지요.

행궁을 관람할때는 대략 편액이 걸려있는 20여개소의 건축물만 둘러보면 만점을 받을 수 있는데~~

건축물들이 미로처럼 계속 연결되어 있어서 길 잃어 버리면 나오지도 못 할것 같습니다.

 

 

화성행궁에 들어서면 맨 앞쪽에 홍살문이 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뒷쪽으로 신풍루가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문입니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는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대왕의 수원사랑을 보여 줍니다.

 

 

화성행궁은 영화 및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요.

이곳에서 대장금, 이산, 해를 품은 달, 왕의 남자, 구르미 그린달빛 등 명작들이 나온곳입니다.

그리고 예능프로그램 1박 2일도 촬영을 했다는 광고판이 보입니다.

 

 

화성행궁 건축물의 배치를 보여주는 조감도를 살펴보세용^^

참으로 복잡하기만 합니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아마도 골치 아프다고 하면서 대충 한바퀴 둘러보고 나올겁니다.

 

 

이렇게 입장하기 전에 화성행궁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정보를 공부합니다.

화성행궁이란 현판 바로 옆에는 특이한 비석이 보입니다.

이 비문을 읽어보면 화성행궁의 복원에 대한 사연이 새겨져 있습니다.

 

 

신풍루 왼편 끝쪽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서 신풍루를 들어섭니다.

그리고 앞쪽에 좌익문이라는 큰 대문이 있더라도 일단 모르는척하고 오른쪽으로 갑니다.

좌익문은 내삼문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 역할을 하는곳 입니다.

 

 

좌익문 우측에는 600년이 넘는 노거수 나무가 모진 생명력을 이어가는 신목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하얀 쪽지에 소원을 적어서 벽에 있는 줄에 묶어둡니다.

그랬더니 정말 소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다음코스로 진행할 수 있게 해주세요." ㅎㅎ

 

 

 

노거수나무 옆쪽의 대문을 들어가면 집사청이라는 건축물이 나옵니다.

집사청은 궁궐의 붓과 먹, 벼루 등 대궐안에 열쇠와 비품들을 관리하는 집사들의 건물입니다.

그리고 집사청에서 연결되는 북군영 건물은 요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답니다.

 

 

집사청을 둘러보고 나와서 좌익문 우측 건물벽쪽에는 관람객들이 모여 있네요.

이곳에서는 고리걸기등 민속놀이 체험을 하는곳입니다.

참 쉬울것 같은데 던져보면 마음대로 안돼용^^

 

 

그리고 좌익문 좌측에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서있기에 다가가 봅니다.

이곳은 포토존으로 조형물의 크기가 사람과 비슷해서 함께 사진을 찍으면 실물같이 보입니다.

남자들은 장금이를 안고 사진 찍었다가 부인한테 혼났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ㅋㅋ

 

 

이곳에 들어온 동선은 신풍루와 좌익문을 거처서 세번째 대문인 중앙문이 보입니다.

중앙문의 좌우로는 사방으로 건축물이 길게 이어져 있어서 규모가 엄청크게 보일겁니다.

중앙문은 행궁에서 가장중요한 정전인 봉수당으로 출입하는 대문입니다.

 

 

내삼문인 중앙문을 통과하니 바로 앞쪽에는 봉수당이라는 편액이 보입니다.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이라 하지요.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곳 봉수당에 들어서면 가장먼저 가운데 배치되어 있는 화려한 용상이 보입니다.

용상의 뒷편에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는 병풍이 둘러져 있고~

옆 방에 집무실에는 정조대왕이 부동자세로 앉아서 집무를 보고 있네요. ㅎ

 

 

정전의 좌측에는 우리가 사극에서 보던 잔치상이 차려져 있네요.

이곳은 정조대왕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한곳입니다.

실제로는 이 보다 몇 배는 더 큰 잔치상을 차렸을거라고 모두들 생각할 겁니다.

 

 

봉수당의 왼쪽편에는 경룡관이라는 편액이 보입니다.

경룡관은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누문인데,

경룡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한다고 합니다.

 

 

봉수당의 뒷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길게 이어지는 건물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환관들이 머물던 숙박시설들이 보입니다.

방안에는 글을 읽고 있는 환관의 모습도 낮설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환관들의 숙소를 지나서 건물의 끝쪽으로 가면 상궁과 나인들의 숙소도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방안에서 바느질하는 나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치장하고 있는 상궁의 모습들도 상상해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자그마한 대문을 들어서니 이번에는 장락당이라는 편액이 보입니다.

장락당은 화성행궁의 침전이라고 합니다.

정조대왕은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빌며 직접 편액을 써서 걸었다고 하네요. 효자 정조^^

 

 

장락당을 살짝 둘러보고나서 장복문이라는 작은 대문을 통과합니다.

이곳은 복내당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네요.

복내당은 화성행궁의 내당으로 평상시에는 화성 유수의 가족들이 거처라고 합니다.

 

 

복내당에서 작은 대문을 나서니 이번에는 대장금 촬영지를 보여주고 있네요.

그리고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이, 수라간 장금이, 의녀 장금이, 최고상궁 장금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수라간에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장면과 가짜 식재료도 보입니다.

 

 

수라간을 지나서 작은 대문을 빠져나오니 이번에는 넓은 마당이 있는 유여택이라는 건물이 나옵니다.

유여택은 정조대왕이 행차중 잠시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이라 합니다.

유여택의 대청마루에는 화려한 문양의 용상이 보입니다.

그리고 마당에는 앙부일구라는 해시계도 있네요.

 

 

유여택을 지나면 사방으로 빈틈없이 건축물이 둘러져 있는 부속건물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한쪽편에는 정조대왕의 선친인 사도세자를 떠오르게 하는 뒤주가 몇개 있습니다.

이곳은 좁은 뒤주에 들어가면 어떤 마음인가를 체험해보는 곳입니다. 

 

 

유여택을 지나서 비장청 가기전에 작은 대문을 나서면 궁중악기 보관소가 있네요.

우리가 사극에서만 보았던 타악기들과 커다란 북도 보이는데,

악기들의 이름은 생각이 안나네용^^ 가물가물~~

 

 

비장청에 머무르는 비장은 관찰사나 절도사등 지방관이 데리고 다니던 막료랍니다.

조선 후기에는 수령까지 비장을 거느리는 것을 관례화하여 민정 염탐을 시키기도 하였다 합니다.

비장 하니까 배비장전이 생각나네요. ㅎ

 

 

비장청에서 또 하나의 대문을 나가면 서리청이 나옵니다.

서리청은 서리들이 사용하는 건물이며,

서리란, 문서의 기록 및 수령, 발급을 담당하는 아전이라고 합니다.

 

 

이런 동선으로 화성행궁을 관람하고 나오면 입장할때 장금이가 서있는 좌익문의 좌측으로 나옵니다.

가볍게 한바퀴 둘러 보았지만 화성행궁의 규모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밖에도 봉수당 뒤쪽의 후원으로 나가면, 낙남헌, 노래당, 득중정, 내포사, 미로한정도 있습니다.

 

화성행궁의 일부는 출입을 제한하는 구역도 있지만, 출입가능한곳만 둘러 보아도 기억하기 쉽지 않습니다.

행궁을 둘러보면서 동행한 친구들의 한결같은 표현은 "어디서 어디로 나왔는지 기억이 안나네" 합니다.

아무튼 화성행궁을 짧은 시간에 둘러 보면서, 당시 왕권의 유엄과 막강한 세력을 새삼 다시 한번 느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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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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