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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는 조선시대 왕실문화와 더불어 많은 많은 역사적인 유적들이 남아 있는곳이다.

그리고 현시대는 도자기와 쌀로 널리 알려진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것이다.

우연찮게 여주땅을 지나가면서 여주IC를 진입하기 위해서 지나가다가 명성황후생가를 만났다.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고종의 비 명성황후가 태어나서 8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정치에 참여하여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갔으나,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명성황후 능은 청량리에 있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홍릉으로 함께 합장되었다.
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본래 숙종의 장인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후 민유중의 5대손인 민치록이 거주할 당시 이곳에서 명성황후가 태어나서 8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명성황후 생가유적지를 탐방하기위해 입장을 하려면 주차비와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간다.

안내소를 지나서 잠시 직진하면 관리사무소가 보인다.

그리고 이어서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 진입해서 주차를 마치고 앞쪽의 기념관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연못가에 서있는 정자각을 바라보며서 기념관쪽으로 관람동선을 정한다.

기념관 앞쪽에는 최근년에 세워진듯한 명성황후 추모비가 보인다.

 

 

명성황후 추모비를 한번 읽어보고 생가터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면 또 하나의 비석이 보인다.

이곳은 명성황후 순국숭모비가 또 하나 서있는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쪽으로 진행하면서 커다란 태극기가 벽면에 걸려있는 명성황후 기념관을 탑방하게된다.

 

 

명성황후 기념관 옆에 위치한 문예관은 문화시설로서, 지하 1층, 지상 1층),

관람석 161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명성황후와 관련된 행사등을 위한 문화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일단 관광객들은 이곳을 탐방할 일이 없기에 패스하는곳이다.

 

 

명성황후 기념관의 좌측에 위치한 특별전시실은 고종황제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있다.

그리고 정면에는 고종황제의 장례식 모습등이 담긴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명성황후 생가 맞은편에 위치한 명성황후 기념관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된 기념관이다.

전시실에는 명성황후와 고종의 영정등을 비롯한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의 벽면에는 다양한 조선말기 고종황제의 역사적인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입체적인 모형으로 제작된 고종, 명성황후의 가래 및 고종황제 장례식 모습을 제현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경복궁에서 일본인에 의해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장면을 연상한 그림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앞에는 명성황후가 시해당했다는 커다란 칼도 전시되어 있다.

칼의 실물은 선명하게 사진 찍기가~ 뭐해서~~ 패스^^

 

 

명성황후 생가 안채는 고종황제의 비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집이다.

원래 숙종의 장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서 남아 있는 것은 안채 27평뿐이었다.

이후 최근년에 사랑채와 행랑채, 별당등을 건립하여 조선중기 살림집의 면모를 갖추었다.

 

 

집안에 들어서면 행낭채를 통과해서 사랑채와 안채로 이어진다.

행낭채는 대문 양쪽에 붙어 있는 하인들의 방으로

이곳에서 하인들이 농한기에는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는 일을 하였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공간으로 주택의 가장 앞쪽에 자리한다.

보통 안채와 바깥 행랑채 사이에 위치하며 사랑방, 대청, 침방 등으로 구성된다.

 

 

별채는 물채의 곁이나 뒤에 따로 지은 집으로 주택에 부속된 별당은 주택 내에서 사랑채의 연장이다.

별채는 가장의 다목적인 용도로 쓰여지거나 자녀나 노모의 거처로 쓰여지기도 하였다.

 

 

안채는 주로 부인들이 거쳐하는 공간으로 주택의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몰채, 내당 등으로 불리며 안방, 대청, 건넛방, 부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성황후 생가터에서 조선중기 건축물의 구조를 둘러보고 나온다.

생가터 오른쪽에는 자그마한 정자각 안쪽에 명성황후탄강구리비가 있다.

이 비석은 생가터 옆에 명성황후가 태어난 옛 마을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비석이라 한다.

 

 

명성황후탄강구리비 옆에는 조선 숙종의 장인이자 명성황후의 6대조인 민유중의 신도비가 있다.

민유중은 효종 원년(1650) 중광문가에 병과를 급제한 뒤 숭문원을 거쳐 예문관에 보직되었다.

숙종 7년(1681) 딸이 숙종의 계비(인현왕후)가 되자 영돈녕부사가 되어 여양부원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잠시동안 조선왕실의 역사를 어렴풋이 느껴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관광객들은 주마간산이다.

어찌 조선왕실의 복잡했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새겨진 자료들을 가볍게 읽어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생가터 옆에 있는 민가마을과 감고당을 돌아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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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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