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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청학동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삼신봉과 청학봉을 지나서 불일폭포의 웅장한 장관을 구경하고나서 한참을 내려서니, 쌍계사의 가람이 숲속으로 아련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사찰답사라면 일주문을 통해서 사찰경내로 들어서고, 금당구역과 대웅전구역을 답사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내려서면서 답사를 하게되었다.

쌍계사는 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이신 고운 최치원선생의 혼이 새겨져있는 진감국사 대공탑비와, 쌍계석문의 친필이 새겨져있는 소중한 보물을 간직한 천년고찰이다. 쌍계사는 하동군 화개장터 화개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십리벗꽃나무길을 따라서 올라간 이곳 지리산 남쪽기슭에는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스님이 창건한 쌍계사가 있다.

십리벗꽃나무길하면 떠오르는 쌍계사의 경내 볼거리로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친필 쌍계석문,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47호)를 지나 북쪽 500m 거리의 국사암 뜰에 천연 느릅나무(사천왕수), 또한 동북쪽으로 2km 남짓거리에 청학봉과 백학봉의 두 계곡을 끼고있는 높이60m, 폭3m의 불일푹포(지리산 10경 중의 하나) 등의 이름난 곳이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 보물 3점(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국가지정 문화재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의 많은 문화유산, 칠불암, 국사암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대웅전은 신라 문성왕때 진감선사가 초창한 이래 인조, 숙종, 영조때 중수를 거처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국보 47호인 진감선사 대공탑비를 지나서 위쪽으로 배치되어있다.

이석등은 절안에 어둠을 비출뿐아니라, 빛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춤으로서 중생을 깨우쳐서 선한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언제나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과 함께 법당앞에 배치하게된다.

쌍계사 마애불은 대웅전 동쪽 경내에 있는 큰 암석 한면을 움푹 들어가게 파내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두껍게 양각하였다. 이 불상은 마치 승상으로 보일 만큼 소박한 형상이며 조성년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위시하여 명부 시왕이 안치된 전각으로 조선 숙종 13년(1687년) 성안대사가 창건하였고, 숙종 36년 (1710년) 신민대사가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것이라한다.

이 비는 국보 47호인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고색창연한 비석으로 신라 진성여왕 원년 (887)에 건립되었다. 신라 헌강왕의 칙명에 의해 신라 최고의 문호 최치원선생이 글을 짓고 환영스님이 각자하여 쓴 진감선사의 전기비이다.

적묵당의 바닥은 지반을 파서 온돌로 되어있으며, 건물 앞 뒤에 툇마루를 두고 뒷 툇마루 상부에는 반자로 천정을 구성하였다. 적묵당은 설선당과 마주하는데, 대웅전과 팔영루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쌍계사 구층석탑 고산스님이 인도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 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셨다.

천왕문은 사천왕을 봉안한 문으로 사천왕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서주를 다스리는 광목천왕, 남주를 다스리는 증장천왕,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의 네 분이라한다.

금강문의 건축양식은 단층 맞배기와집으로 익공식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측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정면 어간을 개방하고 양측간을 벽체로 막아 금강문이나 사천왕문의 일반적인 양식이다.

사찰경내에 진입하려면 첫째 관문을 통과하는 일주문이 있는데, 항상 한마음 한뜻으로 수도정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한다. 이사찰은 일주문과,금강문, 천왕문이 경사로를 따라서 일렬로 배치되어있다.

사찰입구에는 관광객들의 입맛을 당기게하는 몇개의 식당과 노점상들을 지나면 안판이 커다랗게 보이고, 조금 앞쪽에는 매표소가 있다. 일명 문화제 관람료로 입장권을 끊어야 들어갈 수 있다.

쌍계사를 들리려면 화개장터에서 십리벗꽃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6km 지점에 대형주차장이 있으며, 이곳에서 조금더 올라가서 쌍계1교를 건너가면 쌍계사 진입로다. 전국 명산 아래에는 유명한 사찰이 있게 마련이다. 유명한 사찰들은 불교문화의 전파된지 천년이 넘었으니 당시에 건립된 고찰들은 그만큼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이런 고찰들은 오랜 세월을 어렵게 지켜온 국보급 문화제와 보물들이 많기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고찰을 돌아보기 위해 연중 끊임없이 북적대고있다. 필자는 어떤 종교적인 믿음이 전혀없은 무신론자지만 옛선인들의 얼을 되새겨 보고자 사찰탐방을 가끔하기도 하지만 이날처럼 산행을 하다보면 덤으로 사찰답사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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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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