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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길에 보이는 거대한 봉분이 울타리 넘어로 보였다.무슨 묘소인데 저렇게 크게 만들어져 있을까? 궁금하여 돌아보지 않을수 없었다.이곳은 홍성군 지역에서 있었던 의병활동 가운데 홍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수백 의병들의 유해를 한자리에 모신 커다란 묘소가 있는 홍성읍 대교리의 홍주의사총이라는것은 안내문을 보고서야 알게되었다.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8월 17일 사적 431호로 재지정 되어서 홍성군에서 관리를 하고있었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일어났는데, 충청남도 홍성지방에서는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다고 알려졌다. 1906년 고종 황제의 명을 얻어 의병을 모아 남포와 보령에 있는 일본군을 습격하여 병기를 탈취하였으며, 3월 20일에는 홍주성을 함락시켰다한다.


그러나 일본군대포 공격이 본격화되면서 의병 수백명이 전사하여 시체가 홍주천변과 남산 일대에 흩어져 방치되었다가, 1949년에 항일의병의 유골임이 밝혀져 이곳에 모셔졌다한다. 홍주의병의 핵심적 연구자료등의 자료를 종합해 볼 때, 홍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 전사자는 최소한 98인, 많게는 수백이라는 기록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홍주성에서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우다 순국한 의병 수백 명의 유해가 묻혔다고 하는데, 1949년 4월 5일 홍성 군수 박주철과 경찰서장 박헌교가 부하직원들과 함께 나무를 심다가 의외로 많은 유골을 발견했는데, 홍주성에서 싸우다 전사한 의병들의 유골이 임시 매장된 것으로 판명되어 유골을 모아서 분묘를 조성하였다한다.

그러나 일본군대포 공격이 본격화되면서 의병 수백명이 전사하여 시체가 홍주천변과 남산 일대에 흩어져 방치되었다가, 1949년에 항일의병의 유골임이 밝혀져 이곳에 모셔졌다한다. 홍주의병의 핵심적 연구자료등의 자료를 종합해 볼 때, 홍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 전사자는 최소한 98인, 많게는 수백이라는 기록이 확인되었다고 한다.창의문을 통과하면 길게 늘어진 보도블럭을 따라, 계단이 보이고 뒤쪽에 커다란 봉분이 보인다.

  묘는 봉분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고, 봉분의 앞쪽에는 커다란 상석이 놓여져 있다. 

 가까이 다가서 보니 둘레석 위쪽의 봉분은 무척이나 크게보였다. 

 묘의 오른쪽에는 정인보님이 짓고 심상직님이 쓴 묘비가 있으며,
병오순난 의병장 사공묘비라고 적혀있다. 

홍주의사총을 내려와서 오른쪽 끝쪽에는 사당인 창의사가 있는데,관심있게 안보면 잘보이지 않아서 자칫 못볼수도있다. 매년 5월 30일 순국의사 추모제를 올리고 있으며, 을미의병으로부터 연면히 계승되어 온 한말 홍주의병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중요한 유적이다.요즘은 이런 중요한 열사들의 계승정신이 퇴색되어 가고있지만, 외세의 침략에 굿굿이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열사들의  정열을 현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마음속 깊이 새겨주었으면 하는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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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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