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남한산성 성곽길을 따라서 한바퀴 둘러보는 탐방로인 5코스를 선택하면, 전체거리가 거리 약 8km 정도로 3시간정도 소요된다.  탐방로를 답사하다보면, 웅장한 산세와 자연 소나무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자연환경에 도취하게 된다. 또한 남한산성 내에는 200여개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자연생태환경과 더불어 산성 내 구석구석이 역사와 설화가 살아있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문화유적지를 만나게된다.

 

남한산성 성곽길을 따라 걷다보면 우선 동, 서, 남, 북에서 4대문을 만나게된다. 또한 성곽에서 멀지않은곳에 많은 문화유적지가 있어서 이정표를 따라서 오르내리는 수고를 조금 해야한다. 그리고 산성 안쪽에 조금 떨어져 있는 중요 문화유적들은 별도로 이동해서 둘러 볼 수 밖에 없다.

 

 

▲ 남한산성 동문 (좌익문)

남한산성 남동쪽에 있으며 남문인 지화문과 함께 사용빈도가 가장 높았던 성문이다.
조선 선조 때와 인조 2년(1624)에 수축하였으며 정조 3년(1799) 성곽을 개축한 후부터 좌익문이라 불렀다.

 

 

▲ 남한산성 서문 (우익문)

 남한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99)에 개축하여 우익문이라 부른다.
서쪽 경사면 때문에 물자를 이송은 힘들지만 광나루와 송파나루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 남한산성 남문 (지화문)

선조 때 남문· 동문 등을 수축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의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 문을 통과하였다.

 

 

▲ 남한산성 북문 (전승문)

남한산성의 북문으로 남한산성 북쪽 해발 365m 지점에 있는 문으로, 이 문을 통해 세곡을 운반하였다.
인조 2년(1624)에 신축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99) 성곽을 개축한 후 전승문이라 이름 붙였다.

 

 

▲ 망월사 -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 111호
장경사 뒤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한산성내에 있는 9개의 사찰 중 가장 먼저 지어진 사찰로,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의 장의사를 허물고 불상, 금자화엄경, 금정 1구를 이곳으로 옮겨와 지었다고 한다.

 

 

장경사 -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 15호
성내에 존재했던 9개의 사찰 중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현존한는 유일한 사찰이며,

이 사찰은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수축시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위해 건립한 군막 사찰이다.

 

 

현절사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호

이 건물은 병자호란 후 심양에 끌려가 충절을 지키다가

그곳에서 비운을 맞은 삼학사인 오달제, 윤집, 홍익한의 영혼을 모신 사당이다.

 

 

지수당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4호
조선 현종 13년(1672)에 이세화(1630∼1701)가 지은 건물로 당시 고관들이 낚시를 즐기던 곳이다.

건립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의 연못만이 남아 있다.

 

 

▲ 연무관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호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에서 무술을 닦은 무사들 중 무예가 뛰어난 사람은 선발되어 한양으로 진출하였다고 한다.

 

 

침쾌정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호
침괘정의 오른쪽에는 무기를 보관하던 무기고와 무기제작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시진이 중수하고 창을 베개삼는다'는 뜻으로  '침과정' 이라는 편액을 걸어다.

 

 

▲ 천흥사 동종

남한산성 종각에 있는 천흥사 동종은 천안 천흥사지에 있던것을 언제 옮겼는지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 남한산성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으나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며,

현재 남한산성에 있는 천흥사 동종은 동일한 문양을 재현하여 3배 크기로 제작하여 걸었다고 한다.

 

 

▲ 개원사 -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 119호

조선 인조2년(1624) 파손된 성곽을 보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승병의 총 지휘소로 사용되었던 사찰이다

이 절은 병자호란 때 암 각성선사가 조선 8도의 도총섭이 되어 승려들을 지휘하여 남한산성을 축성하였다.

 

 

▲ 숭렬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
조선 인조 16년(1638)에 지은 사당으로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모시고 있다.
뒷날 남한산성을 쌓을 당시 총책임자였고 병자호란(1636) 때 싸우다 죽은 이서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 국청사지
서문에서 남동쪽으로 228m지점의 해발 44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절이 있는 곳은 국청사지에서 북쪽으로 140m 지점인데 이절은 한국전쟁 이후 새로 지은 절이다.

 

 

수어장대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호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다.

이 건물은 남한산성 군사의 지휘 및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어진 누각이다.

 

 

▲ 청량당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남쪽의 공사를 맡았던 이회와 그의 부인 그리고 벽암대사를 모신 사당이다.
현재 모시고 있는 초상화는 한국전쟁 때 분실되어 훗날 새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남한산성 행궁 - 국가사적 480호
도성 안의 궁궐이 아니라 한양에서 임금이 거동할 때 남한산성에 머물때 이용하는 별궁을 말한다.

남한산성행궁은 정무시설은 물론 다른 행궁에 없는 종묘사직 위패 봉안 건물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남한산성 인화관

인화관은 행궁 정문 밖에 있는 객사의 건물로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있다.

외국의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의 숙소로도 이용하거나 행궁에 외부 방문객을 머물게 한곳이다.

 

남한산성 탐방을 하면서 성곽의 주변과 산성내 곳곳에 남아있는 문화유적지를 이렇게 둘러보았다. 물론 이렇게 많은 문화유적들을 둘러 보려면 하루쯤 시간을 투자해야 할것이다. 하지만 선인들의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산성 곳곳을 둘러보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한번쯤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반응형

Posted by 털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