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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여행 2일차의 재미없는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됩니다.

이번에는 여주대교를 건너서 남한강변에 위치한 고즈넉한 천년고찰 신륵사를 탐방하러 갑니다.

신륵사는 남한강 상류 봉미산 기슭에 있는 전통 사찰로,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옵니다.

 

이후 고려 우왕 5년에 나옹화상때 크게 번창하였고, 성종 4년에는 절의 이름을 '보은사’라 했답니다.

절 이름을 ‘신륵’이라 한 것은 미륵 또는 나옹이 신기한 굴레로 말을 막았다는 설과,

마을에 나타난 사나운 말을 인당대사가 신의 힘으로 제압했다하여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답니다.

 

자~ 이제 신륵사를 탐방하러 들어갑니다.

우선 사찰을 들어가려면 대부분 이런 일주문을 통해서 들어가게 됩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경건한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신륵사는 일주문 우측에 있는 매표소에서 우선 문화재관람료부터 지불하고 입장합니다.

 

 

일주문을 들어섰는데, 아직까지 안개가 걷히지 않아서 경내에 습기가 자욱합니다.

아직 이른 아침시간이라 옛말 그대로 '마치 절간처럼 조용하다.' 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그래서 기념품 판매점에 들려서 따듯한 유자차를 한잔씩 마시고 잠시 몸을 녹히고 들어가도 괜찮더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사찰의 경내로 진입하는 불이문이 보입니다.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답니다.

 이렇게 뜻은 좋지만 쉬운말은 아니지요.

 

 

불이문을 통과하면 좌측에 기와집이 몇동 밀집되어 있는 풍경이 보입니다.

이곳은 신륵사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곳이라 합니다.

아마 단체로 신청해서 합숙하는 공간일겁니다.

 

 

좌측에 비석군을 지나서 조금 걷다보면 이제 본격적으로 신륵사 가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신륵사는 산속이 아니고 강변에 위치하고 있기에 평평해서 탐방하기 아주 편합니다.

입구에는 겨울철에도 마르지 않는 약수터 세심정이 먼저 반겨줍니다.

 

 

범종각은 목어, 운판, 범종, 법고 등을 모아 둔 곳으로,

범종각의 법고는 육상의 생물들이 미혹함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치는 것이라합니다.

범종각은 어느 사찰을 가더라도 우선적으로 보일겁니다.

 

 

신륵사를 탐방하면서 가람의 범위가 넓어서 차근히 둘러보려고 하다보니 뒤쪽의 명부전이 나오네요.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이라고도 한답니다.

명부전 바로 앞에는 500년생 향나무가 있습니다.

 

 

명부전 뒷쪽의 산밑에는 2기의 사리탑을 보면서, 옆으로 이동하니 조사당이 나옵니다.

조사당은 신륵사 여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이라 합니다.

 현재 신륵사 조사당은 보물 제180호 관리되고 있습니다.

 

신륵사 대웅보전 맞은편에는 구룡루라는 정자각이 있습니다.

구룡루라는 석가부처님이 탄생하실 때 성수를 뿜어 부처님을 목욕시켰다는

아홉 마리 용에 대한 이야기와, 신륵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아홉 마리 용의 이야기와 관련있답니다.

 

 

신륵사 극락보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사찰 경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극락보전은 절의 본당으로,

천정 아래 대들보에는 나옹 스님이 썼다고 전해오는 '천추만세(千秋萬世)'라고 쓴 편액이 걸려져 있습니다.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제225호)
극락보전 앞에는 흰 대리석으로 쌓은 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복련과 앙련, 물결무늬 등이 매우 사실적이고 구름 속을 노니는 용의 모습이 인상적 입니다.

 

 

신륵사 대웅보전과 앞뜰에 세워져있는 다층석탑을 둘러보고 다시 뒤뜰로 올라갑니다.

삼신을 모신다는 독성각·산신각·칠성각을 통합적으로 일컫는 삼성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삼성각 앞쪽에 요사채의 기와지붕이 아름답게 보이기에 사진을 한장 찍어 봅니다.

 

 

삼성각 뒷쪽의 산길로 올라가면 산속에 3점의 보물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탐방때는 패스했더니~~ ㅎㅎ 합니다.

이사진들은 8년전 여름철에 신륵사 탐방때 찍어둔 자료사진입니다.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앞 석등(보물 제231호)
보제존자 석종 앞에는 공양등의 성격을 지닌 높이 1.94m의 화려한 석등이  있습니다.

이 석등은 고려말기 나옹이 입적한 후 부도를 세웠던 1377년(고려 우왕 3)에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보물 제228호)
조사당 뒷편 언덕 위에는 전망이 좋은 곳에 나옹선사의 부도가 있습니다.

이 부도는 높이 1.9m 크기로 종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석종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호)
보제존자의 석종위에는 석종비가 있는데 나옹선사가 입적하자 각신스님이  석종을 만들고

각주스님이 비를 세울 좋은 돌을 구하여 이색에게 글을 쓰도록 청하여 만들어 진 비라고 합니다.

 

 

이제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성보문화재들을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이제는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강변으로 나가봅니다.

지나가다가 성보문화재는 아니지만 오래된 공덕비가 있기에 사진에 담아봅니다.

 

 

극락보전 동쪽 언덕에 있는 대장각비는 맞은 편에 있었던 대장각에서

대장경을 인출한 기념으로 1387년(고려 우왕 13)에 세운 것이라 합니다.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
비의 높이는 133cm, 너비 88cm이며 이를 보호하는 돌기둥을 세웠습니다.

이 비는 복련대석과 옥개석을 얹어 놓은 모습으로, 비문은 2cm의 해서체로 당시 직제학 권주가 썼다고 합니다. 
이 비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깨져 있지만,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다층전탑은 경내 동남쪽 강가에 솟은 동대위에 있는데,

벽돌의 무늬로 보아 처음 조성한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이는 고려시대 유일의 전탑이라 합니다.

 

 

전탑 아래에 누각은 본래 나옹선사가 입적한 후 화장터의 석탑 가까이에 세워졌답니다. 

강월헌이라는 이름은 나옹의 당호로 그를 추모하여 누각을 세웠다고 합니다.

강월헌에 올라가보니 풍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시가 절로 나올듯한데 글이 짧아서~~ㅎㅎ 했습니다.

 

 

강월헌 앞에 있는 삼층석탑으로 오래된 성보문화재처럼 보이는데 자료가 없네요.

다만 무었 때문에, 누구에 의해 조성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물을 바라보는 경관은 너무나 매력적 입니다.

 

 

강월헌에서 보이는 남한강변은 황포돗을 올리고 바람을 이용하여 물자를 수송하던 곳으로서,

그 옛모습을 재현하기위해 황포돗배 유람선이 운행하는 풍경을 볼 수 있는곳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겨울철에는 운항을 안하니 분위기가 썰렁해 보이네요.

 

 

신륵사 탐방을 마치고 신륵사 이야기를 정리해봅니다. 신륵사는 고려시대 대선사 나옹선사의 혼이 깃들어있는 도량입니다. 그의 얼이 담겨있는 흔적은 극락보전과  조사당 그리고 조사당 뒷산에 석종부도, 석종비문에서도 알수 있으며 나옹선사 다비터에 세운 강월헌 누각에도 그의 혼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탐방객들은 신륵사의 성보문화재를 둘러 보면서 천년고찰에서 선인들의 얼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불자들에게는 소중한 기도도량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사찰의 의미를 떠나서 남한강변의 경관좋은 위치에 있어서 주변관광과 더불어 관광명소로서 의미가 새겨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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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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