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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여행 2일차는 미국마을 숙소를 나오면서 미국마을의 풍경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 미국마을의 뒷산인 호구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고찰 용문사를 찾아갔다. 용문사는 미국마을을 지나는 중앙로를 통과해서 경사도를 높이면서 올라가게된다. 용문사는 높은 산자락에 있기에 가파르게 경사진 도로를 따라서 한참 올라야 한다.

 

미국마을을 뒤로하고 잠시 경사진 도로를 오르다보면 산자락을 평탄하게 밀어서 2단으로된 넓은 주차장이있다.

용문사주차장을 지나면 서포문학공원이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아마도 서포 김만중선생의 고향이 남해 조도이기 때문에 홍보차원에서 이곳에 흔적을 남긴듯싶다.

 

 

서포문학공원을 지나면 갑자기 도로가 급경사를 이룬다.

그리고 조금 올라가다보면 호구산 용문사의 대문인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서 용문사까지는 2~300m 정도의 거리지만 급경사로를 이루고 있다.

 

 

아직까지 아침 시간대라서 용문사 탐방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기에 자동차로 끝까지 올라갔다.

잠시후 작은 삼거리가 나오면서 우측은 용문사고 좌측길은 백련암과 염불암을 오르는 길이나온다.

이곳의 공터에 자동차를 세우고 공덕전 포대화상옆에 세심교를 건너서 진입했다.

 

 

세심교를 건너면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각이 나온다.

동쪽의 지국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이 지키고 있다.

사천왕은 왕관을 쓰고 비파·검·용·창을 각기 들고 있는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무섭게 생겼다.

 

 

천왕각을 지나서 조금 올라서면 2층누각인 봉서루 아랫층에 특이한 유물이 있다.

구유라고 불리는 통나무 그릇이 있는데, 소의 먹이를 주던 여물통이다.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1,000명분의 밥을 담았다고 하는 유물이다.

 

 

봉서루를  들어서면 앞쪽에 마주하고 있는 용문사 대웅전이 보인다.

용문사는 신라 문무왕때 원효대사가 보광산(금산)에 건립한 보광사를 그 전신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보광사의 사운이 기울자 조선 현종때 백월대사가 호구산으로 옮기고 절 이름을 용문사라 하였다는데~

 

 

용문사 대웅전앞에서 잔잔한 파쇄석이 깔려 있다.

경내에는 절간처럼 고요한데, 파쇄석 밟히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ㅎㅎ

발 뒤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걸으면서 좌우로 배치된 건축물들을 한장씩 사진으로 남겨본다.

 

 

대웅전 좌측으로는 경사면을 3단계로 평탄하게 골라서 건축물을 지었다.

맨 뒤쪽에는 자그마한 칠성각이 보인다.

사찰경내에 모든 건축물들은 각각의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관광객들은 사진찍기에 바쁘니까~

 

 

이번에는 대웅전 우측으로 걸어본다.

명부전도 있고, 또 다른 건물들이 관광객 입장에서는 굳이 용도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용문사에는 건축물들이 이런 구조로 배치되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제 대웅전을 뒤로하고 바닥에 깔린 파쇄석을 살짝살짝 밟으면서 내려온다.

뒤돌아 보면서 경내에 배치된 건축물들의 전체적인 화면에 담아본다.

그리고 주변에는 무인 찻집도 보이지만 그냥 패스했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전국의 심산유곡에 자리한 사찰답사를 많이 할것이다. 하지만 사찰답사를 많이 하다보면 모든 정보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고 중요한 요점이라도 기억해두자. 남해 용문사는 마치 호랑이가 누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호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남해에서 가장 크로 오래된 천년고찰이라는 점이다.

아! 그리고 임진왜란때 승병들 1,000명이 먹을 밥을 담았다는 구유라는 여물통이 있었지~ ㅋㅋ

 

남해여행 제 7은 가천 다랭이마을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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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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