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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소박하고 풍요로운 넉넉한 마음을 가진 시골스러운 작은 소도시로 알려진 충남 아산시 신인동에는 전설의 고향같이 전해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서 소개해 드립니다.요즘 세상에 전설을 얘기하는건 우습지만 그래도 듣고보면 공감되는 이야기 였다.

 

신인동 갓바위를 보기위해 산자락을 처다보니 외따운운 산밑에 한집이 살고 있었는데 마당가에서 부터 집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까지 각가지 꽃들을 심어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집주인의 특별한 취미인듯 옛날 장독들 항아리들을 수백점  전시하고 쌓아놓고 해서 특별한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을 토대로 문헌을 작성하여 아산시 신인동에 세우기로 정하고 파평윤씨 종중에서 부지를 기증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이 소중한 자료를 길이 보존하고자 특별히 관리해 왔으며 매년 정월 초하루에는 제를 지냈고 그비용은 정월 대보름에 집집마다 지신밟기 행사를 하면서 추렴하여 그기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갓바위의 유래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놓은 안내판은 좌측에는 한글로 우측에는 영문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바위는 신인동 북쪽의 까치봉 기슭에 위치하는 자연석이며,이곳은 아래와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마을에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이들은 금술은 좋았지만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남편은 자식이 없는것을 한스럽게 생각했고  걱정이 많아진 그는 술을 마시기 위해 주막을 자주 들리게 되었다.그런 그를 본 간교하고 욕심많은 주막의 여인이 그를 꾀하였고 그사이에 아들을 두게 되었다.하지만 첩의 간교함은 하늘을 찔러 본부인을 죽이고자 했고 첩의 간언에 넘어간 남편은 결국 본부인을 독살하했다.그후 그들은 재물과 아이을 챙기고 도망치는데 마을입구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과 함께 번개가 치는데 세사람은 모두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한다.

조선시대 토정 이지함 아산 현감이 이곳을 들럿다가 돌아서 있는 전처 형상의 바위를 보고 조강지처를 버리면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는 옛말을 상기시키며 갓쓴바위라고 불렀다고한다.또한 조선 선조때 좌의정을 지낸 오성 이항복 대감이 이곳을 지나다가 바위생김이 갓쓴 바위와 같다고 하여 갓바위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사진으로 보면 맨 앞쪽에는 부둥켜 안은 바위의 모습은 남편과 첩의 바위고  가운데 있는 바위가 돌아 앉은 전처바위며 전처바위 뒤쪽에 자그마하게 갓쓴바위가 아들바위라고 한다.아무튼 전설속에 전해오는 얘기도 재미있지만 4개의 바위의 형상이 갓을 쓴것처럼 보여서 공감가는 전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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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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