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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다는 맹씨행단(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을 답사하였읍니다. 고택의 주변에 들어서자 커다란 은행나무 두그루가 담장안쪽으로 보이고,주변에는 온통 은행열매 고유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사적109호로 지정된 맹씨행단은 말 그대로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으로 맹사성의 고택, 구괴정, 쌍행수 등을 망라하여 "맹씨행단" 이라 한다고 합니다. 맹사성은 이곳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손수 심고 학문에 정진하여 후학을 가르쳤다고합니다.

맹사성은 고려 우왕때 문과에 장원급제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했고 조선이 새롭게 건국된 이후에도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고 세종때 연로하여 좌의정을 사임한 이후에도 원로정승으로 나라의 중대사를 자문했습니다. 1438년(세종20년) 만78세에 별세하자 세종이 슬퍼하며 애도했고 문정공 이라는 시호를 내리게 됩니다.

 표지판을 따라서 고택가는 진입로 약300m 전방에는 맹사성이 지었다는
"강호사시가" 를 새겨놓은 시조비가 보인다.
강호에 봄이드니 미친 흥이 절로난다..............................

 고택의 앞쪽에는 모목이된 팽나무와 호야나무가 지키고 있다. 

맹사성 선생의 본관은 신창인데 사적지를 지정하면서 해당지명을 따라서 아산맹씨행단이 된 것입니다.
'아산맹씨행단' 하면 일반인들은 맹사성 선생의 본관이 아산맹씨인 것으로 착각할 것 같습니다.  

  고택에 들어가려면 이곳에 살고있는 맹사성의 20대 후손 집의 대문을 통과하여야 돌아볼수 있다. 

 이곳을 '행단' 이라고 부르는 이유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은행나무들입니다.
맹사성 선생이 1,400년경에 심었다고 하니 수명도 자그마치 600년이 넘는 고목입니다. 

그 옆으로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정승까지 지낸 분의 저택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소박한 고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고려 최영장군의 부친인 최원직이 건축했다고 전해지며 이후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가 정란을 피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은거한 집이라고합니다.

 맹사성 고택은 설화산을 서쪽으로 등지고 배방산을 동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수백여년간 무사히 보존되어 온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옛 모습을 간직한 집입니다.

양쪽으로 방이 놓여 있고 가운데 쪽에는 대청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맹사성고택은 겉으로는 소박한 분위기가 나지만 고려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귀중한 건축물입니다.

 고택 뒤에는 맹사성과 부친, 조부 등 맹씨 3위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 세덕사에는맹사성의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유물 전시관이있는데, 이곳에 맹사성유물(중요민속자료 225)이 보관되어 있다.

 고택을 벗어나서 왼쪽으로 보이는 후문이 보이는데 이곳은 정각으로 가기위한 후문입니다. 

 구괴정으로 가는 도중 바라본 맹씨행단의 모습입니다.
맹씨행단 담장 안쪽으로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노송들이 가득하게 묵묵히 자라고 있읍니다. 

 울창한 노송이 우거져있고 6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지나간 역사를 말해주는 구괴정이 보인다. 

 구괴정은 조선시대의 명 정승인 고불 맹사성 선생을 비롯하여 방촌 황희선생, 독수와 권진 선생이
각각 세 그루씩 아홉그루의 느티나무 심은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입구 정면에 삼상당 이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맹사성, 황희, 권진 3정승이 국사를논의했다는 데서 불려지는 구괴정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당대 명 정승들이 있어 세종이 성군이 되고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합니다.
정자 안쪽으로 구괴정 이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구'는 아홉을 의미하고 '괴'는 느티나무를 뜻하는 한자입니다.
 
 

 당대 3정승이 국사를 논하던 정각의 주변에 각각 3그루씩 9그루를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2그루만 남아있지만 그나마 지지대에 의존하고
시멘트로 썩어가는 부위를 메워가면서 힘겹게 세월을 이겨내고 있다.

이곳에 답사를 하면서 특징있는 것들은 정승까지 지낸분이 소박하게 살아오던 고택을 비롯하여, 맹사성선생이 집앞에 심었다는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와, 3정승이 국사를 논하였다는 구괴정의 6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지나간 역사를 묵묵히 전해주는듯하여 당시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머리속에 그려볼수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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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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