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금은 서울의 명소가 되어버린 청계천!
조선시대 청계천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바뀐 것일까? 옛 조선시대의 영조 임금은 개천의 물길을 정비하여 한성을 안정시키는 것이 바로 왕정을 바로잡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분지모양을 이루고 있고,
청계천 물은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의 창의문 부근 골짜기를 따라 흘러 물은 모두 낮은 곳으로 모이게 마련이어서 자연적으로 물길이 생겨났고, 옛 조선지명인 백운동과 청풍계의 계곡을 따라 한양의 중심 물길인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세종 임금 때에 한양의 인구는 약 50만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비만 오면 청계천이 범람하여 한양의 거리가 온통 물바다가 되는 양상이어서, 준천사라는 관청을 두어 청계천의 바닥을 파내고 개천 양편에 둑을 쌓는 준설공사를 시행하였고, 이로인해 꾸불꾸불한 작은 자연천은 점차 규모가 큰, 정비된 하천으로 바뀌었다 한다.

개천의 규모가 커지면서 청계천에는 여러개의 다리가 놓이기 시작하였는데, 교량은 단순히 말하면 강을 건너기 위한 물리적 수단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떨어진 두 지역을 잇고 연결하는 수단이어야 하였기에, 다리에는 예로부터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렇기에 청계천을 건너는 다리의 의미를 새겨보면 온통 이야기 천국이다.

◈ 그럼 지금부터 청계천을 건너는 22개의 다리의 역사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청계광장에서 시작하여 고자산교까지 총길이 5.8km의 길이에 청계천을 건너는 다리는 총 22개가 있으며, 차도와 인도가 병행한 다리는 10개이고, 인도 전용으로 이용되는 다리도 12개가 있다.


▲ 모전교
옛 교량 명칭으로 길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과일을 파는 과전을 모전이라고 불렀는데, 이 다리가 바로 그 모전 부근에 있었으므로 이름하였다. 종로구 서린동과 중구 무교동 사이의 네거리에 있던 청계천의 옛 다리이다.


광통교

지금 서린동 124번지 부근에 있었던 다리인데 광통방에 있는 큰 다리였으므로 처음에는 대광통교라 하였다. 특히 옛부터 서울에서는 큰 다리로 알려져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도성의 많은 남녀가 이 곳에 모여 답교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광교
옛멋과 미래와의 만남을 상징하는 다리로, 광통방에 있던 크고 넓은 다리라는 의미에서 옛부터 광교라 일컬어졌으며, 현재 광교 사거리가 이 위치에 해당된다.


장통교
현 중구 장교동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11번지 사이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이다. 이 다리 근처에 ‘장찻골’로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 하여 이 부근에서는 ‘장찻골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원명은 중부 장통방에 있던 다리이므로 장통교, 혹은 줄여서 장교라 하였다.


삼일교
인사동, 명동성당 등을 연계한 근대 건축의 이미지 반영하고,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한 뒤 전국에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는 시위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삼일로 인근에 위치하여 명칭을 인용했다.


수표교
수표교가 놓여진 것은 1420년(세종2)으로 당시 이곳에 마전이 있어서 마전교라 불렀으나, 1441년(세종 23)에 다리 옆에 개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서 수표석을 세운 이후 수표교라고 하였다. 수표교의 원형은 1959년 청계천을 복계할때 장충당공원으로 옮겨졌다.


관수교
전통 대청양식을 도입한 아치교로 1918년 일본에 의해 지금의 청계 3가 사거리에 놓여있던 다리이다. 이곳에 청계천 준설사업을 위한 준천사가 설치되어 있었고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옛 교량 명칭으로 현 관수동에 위치한다.


세운교
세운(조명)상가 특성을 활용해 빛을 표현하였으며, 현 세운상가에 인접하여 세워지는 다리로, 세운상가의 명칭을 인용하였다.


배오게다리
배오게 고갯길을 넘는 사람들의 만남을 상징하며, 현 종로4가 네거리에 배오개라는 고개가 있었으므로 배오개길이라 명명한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새벽다리
시장 천막의 이미지를 막구조로 적용하여 동대문 재래시장의 역사성 및 향수 연출 하였으며, 주변에는 광장재래시장(주단,포목), 방산재래시장(인쇄,지물)이 유명하다.


마전교
빛의 마을과 우마시장의 유래표현을 위해 전통문살모양의 조명과 청동말상 배치 인근 옛교량 명칭으로, 다리 부근에 우마를 매매하는 마전이 있었던 것에서 인용하였다.


나래교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의 다리로, 동대문 의류상권의 중심지역에 위치하는 교량. 인근 동대문 의류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하는 의미를 담았다.


버들다리
사교에 따른 보행자 동선을 위해 차보도 분리 파골라 설치로 도심 속의 정원 연출 하였으며, 과거 오간수문 상류에 왕버들이 많았었다는 데서 명칭을 인용하였다.


오간수교
동대문에서 을지로 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 6가에 있던 다리이다. 홍예문으로 다섯 칸으로 되었다 하여 "오간수다리" 또는 "오간수문" 이라 하였다 이 다리는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 나가는 지점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즉 서울에 성곽을 쌓으면서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다섯 개의 아치형으로 된 구멍을 만들었고, 그 위로 성곽을 쌓아 올렸으며, 아치 모양의 구멍을 서로 연결하여 성벽 안쪽으로 장대석을 연결하여 다리를 놓았다.


맑은내다리
나비의 힘찬 비상을 아치구조와 크로스 케이블로 조화시켜 힘찬 도약 연출, 패션 중심의 상징성 부여 하였으며, 청계천을 순 우리말로 바꾼 이름으로 청계천을 상징할 수 있는 다리 명칭으로 결정하였다.


다산교
친 자연적 이미지를 반영한 현대적 교량 사장교의 주탑을 풀잎모양으로 형상화 하였으며, 조선중기 실학자 정약용의 호를 붙인 도로인 다산로에 인접한 다리다.


영도교
이 다리에 얽힌 전설로는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귀양갈 때, 그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이 곳까지 나와서 서로 영영 이별을 하였다 하여 '영이별다리' 혹은 '영영건넌다리'라고 전해진다.


황학교
황학동 도깨비 시장의 장소성 반영하였으며,  옛날 이곳 논밭에 황학이 날아왔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한다.주변에는 벼룩시장, 중구구민복지회관, 우산각 어린이공원, 동대문도서관이 위치하고있다. 


비우당교
조선 세종 때 대표적인 청백리로 알려진 하정 유관선생 댁이 이 다리 근처였는데, 그의 청렴함은 비가 오는 날에도 방안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비를 피했을 정도였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한다.


무학교
햇살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반영하였으며, 조선 개국초에 이 도로의 종점지역인 왕십벌 지역에 도읍을 정하려고 태조 이성계를 따라 지상을 보러 다니던 고승 무학대사에서 유래한 무학로의 이름을 인용하였다.
 

두물다리
휘몰아치는 바람, 유니세프 지정 어린이 다리를 상징하며, 다리 위치가 과거 청계천 지류가 합류되던 지점으로 두개의 물이 만나는 다리라는 의미이며 다리모양도 서로 만나는 형상으로 되어있다


고산자교
하천층 경관에서 녹지의 단절 이미지 극복을 의미하며,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호를 따서 지은 다리로, 인근에 같은 이름의 도로인 '고산자로'와 연관되어 붙여졌다.


청계천 복원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도심에서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요즘도 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업비를 들여서 복원후 관리하고 있다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부로 인하여 다시금 폐쇄하고 되돌릴수는 없은일이다.

기왕에 많은 사람들이 즐길수 있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면 이 다리들의 상징과 의미의 미학으로 재탄생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초라하고 볼품 없는 다리라 하더라도 이야기 꺼리만 있으면 근원지를 찾아들게 마련이다.
교량이 관광 자원이자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역사속에 청계천은 참으로 많은 얘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조선의 태종과 태조의 두 번째 부인인 강 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광교나, 단종임금과 정순왕후의 애절한 이별을 한 영도교, 김두환의 환상적 활약상으로 유명한 수표교등은 별달리 마케팅을 하지 않았어도 이미 유명하게 알려져있다.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 있는 허름한 양철지붕 다리는 제임스 윌러의 소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의해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파리의 세느 강을 잇는 '퐁네프' 또한 영화의 촬영 배경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다리는 다리의 모양새나 미학보다도 얼마나 재미있고 감동적인 얘기를 담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현대에 익숙한 우리는 가끔 예술성과 기능성만으로 훌륭한 다리를 찾는다. 또 미학적으로만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려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 사는 사이를 잇는 다리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문명과 문명을 이으며 역사적인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에 다리는 진정으로 갈라선 지역을 잇고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될 것이다.

청계천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의 마음을 잇는 훈훈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다리였으면 한다. 기왕에 청계천을 돌아보려면 뚜렸하게 아름답게 눈에 띄이는 시각효과도 좋지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듯한 온정이 흐르는 다리의 의미를 한번쯤 새겨보는것도 청계천관광의 또다른 재미일것이다.


 
유익하게 보셨나요?^^ 손가락 모양 클릭하면 추천됩니다.



반응형

Posted by 털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