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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여행을 하면서 국도변에서 볼 수 있는 이정표에서 '영탑사 보물 제409호 금동삼존불' 이란 표지판을 만날수 있다.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호감이 가는 이정표다. 그래 오늘은 영탑사의 보물을 찾아봐야 겠다는 마음으로 시골마을 좁은 지방도를 따라서 영탑사를 찾아간다.

영탑사는 그리 크지도 않으며, 사찰을 감싸고 있는 상왕산 자락은 나지막하지만 아늑한 분위기로 도량을 둘러싸고 있다.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로 소속되어 있다.  절은 규모가 작지만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점의 문화재들이 오래된 사찰이라는것을 말해주고 있다.

영탑사란 이름을 가지게 된 유래는 고려 때인데, 보조국사가 5층 석탑을 세운 뒤부터 그 영험함으로 인해 영탑사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 뒤에는 무학대사가 천연암석에 불상을 조각하고 절을 중건하였다 전한다. 유리광전 안에 있는 불상은 약사여래상으로 불리고 있는데 암반을 적절히 이용하여 조각한 솜씨가 있다.
 
그리고 영탑사에서 모시고 있는 보물 제409호인 금동삼존불은 고려불상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어 고려시대 영탑사의 사격을 짐작하게 한다. 영탑사의 자세한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근래 들어 신도들이 힘을 모아 절을 일으키고 있어 곧 영탑의 힘이 세상으로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영탑사 입구에 아담한 저수지도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찰 진입로가 시작된다. 주차장주변과 절 입구에는 마치 사천왕처럼 서 있는 느티나무는 수령 400살에 이르고 있어 오랜 절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신록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따사로운 5월 첫주에 찾아간 영탑사는 절입구에는 온통 파랗게 풀들이 피어나고, 그 주변에는 민들레꽃이 노랗게 만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는 파랗게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을 삼존으로 봉안하고, 후불탱인 영산회상탱과 신중탱을 걸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던  보물 제409호 금동삼존불상은 별도의 암실에 보존하고 있다.


대웅전 현판 아래는 대 숲에서 포효하는 호랑이와 구름 사이로 용트림하며 하늘로 오르는 용, 연지와 비천, 모란이 가득 핀 모습, 노송 사이에 노니는 학 등 다양한 이야기를 새겨 넣었다.



대웅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보살을 배치한 삼존불상이 배치되어 있으나, 보물로 지정된 금동삼존불이 아니다. 금동삼존불은 원래 대웅전에 모셨으나, 보존관리상 보이지 않는 별도의 암실에 보관중이다.
 

보물 제409호 로 관리되고 있는 영탑사 비로자니금동삼존불의 진품사진이다.(출처 : 문화재청 자료)


이 범종은 대웅전 우측 입구 앞에 모셔져 있으며, 현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9호로 지정되었다. 이 범종은 ‘건륭 25년 경진년 2월 가야사 법당에 조성하였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1760년(영조 36) 가야사 법당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가야사가 폐사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다고 한다.



영탑사 요사채는 대웅전 좌우에 각각 1동이 있다. 우측에 있는 요사는 최근 지은 건물로 내부는 방과 마루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승려의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 대웅전 좌측에 있는 요사는 공양간으로 임시건물이다.



유리광전은 대웅전 마당 오른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1798년에 지윤 스님이 지은 것으로 전하며 당시에는 영탑사의 주불전 역할을 하였으며, 영탑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유리광전이란 안에 약사여래를 모셔야 하지만 현재 봉안된 마애불(유형문화재 제110호)의 경우 약사불과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유리광전 안에는 광배와 불신이 한 돌로 짜여진 마애약사불을 봉안되어있다. 불상 크기는 높이 1.8m이며 유형문화재 110호로 지정되었다.
유리광전은 동방 유리광세계에 주재하며 질병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인 약사불을 모시는 불전을 지칭한다.


산신각은 유리광전 좌측 언덕에 있으며, 자연석으로 기단과 초석을 놓았다. 기둥은 사각기둥을 세워 납도리를 결구하였다. 구조는 좌우 측면 위로 대들보를 걸고 네모서리에 추녀를 걸어 그 사이에 서까래를 끼운 방식이다.



영탑사 7층석탑은 유리광전 뒤편 바위 위에 서 있으며, 주변은 자연 암반과 송림이 어우러져 풍광이 좋다. 탑의  높이는 3.9m이며 문화재자료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석탑은 가야사 폐사 후 탑과 종을 이곳으로 옮겼다.



영탑사 7층석탑은 몇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그중 조선시대 면천군 동헌에서 7층이 넘겨다보여 재난이 들고 불길하다하는 이유로 탑 높이를 5층으로 축소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후 1911년 신도들이 원래 모습대로 7층으로 복원하였다 한다.



현재 영탑사는 남서쪽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그 오른쪽으로 북동쪽에 유리광전, 산신각, 요사2동을 배치하였다. 유리광전 바로 옆에는 최근년에 지은 노전이 한동 더있다.



상왕산 영탑사를 답사하면서 느낀것은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중수를 거듭하면서 건축물들은 모두 변했지만, 현존하는 문화재들이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영탑사에는 몇점의 문화제가 있지만 특이한것은, 유리광전 뒤편 바위 위에는, 자연 암반과 송림이 어우러진곳에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 7층석탑 우뚝 서 있다. 

영탑사 7층석탑은 영험하다는 이름에서 비롯된 7층석탑으로 현존하고 있지만, 이 탑은 몇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서 조금 혼선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멀지않은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 자락에 있던 가야사 있었는데, 명당자리라 하며 폐사시키고 흥선대원군은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

그후 폐사된 가야사의 7층석탑과 범종을 이곳 영탑사에서 보존하게 되었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영탑사를 대변하는 보물은 고려시대 중엽에 제작된, 총 높이 51cm, 본존높이 27.5cm, 좌우 보살 높이 18cm의 작은 금동삼존불이있다. 대부분 답사자들은 대웅전 안쪽을 들여다보고 보물 제407호인 금동삼존불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금동삼존불은 원래 대웅전에 모셨으나, 크기가 작고 아름다워 1975년 도난을 당했었다. 이후 일본으로 반출되기 직전에 수습하여 다음해 겨우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지금은 별도로 암실을 마련하고 봉안하고 있어서 소중한 보물을 공개적으로 볼 수 없으니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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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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