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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우리나라는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우리 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후 고구려사를 포함한 1984년 우리정부 수립 이전의 역사 등 기술을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전면 삭제해 버렸다. 만일 고구려사가 중국에 편입되면 발해는 물론 고조선가지 한국사에서 제외됨으로 5천년 역사가 2천년으로 줄어든다.

현재 장군총과 고구려유물 그리고 광개토대왕비를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아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고구려의 흐름이 이어지고 한국인의 가슴속에는 광개토대왕이나 을지문덕의 숨결이 면면히 흐르는데 힘으로 역사를 바꾸려는 시도는 지극히 야만적인 행위가 아닐수 없다.

이런 상황에 최근 음성큰바위얼굴 조각공원에 실물크기의 광개토대왕비가 새워져서 화재가 되고있다. 이 비는 쌍둥이 광개토대왕비로 한개는 한문을 기록하고, 한개는 한글로 번역해서 나란히 새워져 있어서, 한글만 알면 누구나 판독할수 있도록 되어있어 관광객들로 부터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 우측비는 한글판, 좌측비는 한문으로 새겨진 쌍둥이 광개토대왕비

비석은 사각형이며 대체로 세 부분을 나누어진다. 고구려의 건국부터 광개토왕까지의 역사를 다룬 첫째 부분은 묘비 제1면 1행에서 6행까지이다. 광개토왕의 정복 전쟁을 기술한 둘째 부분은 제1면 7행부터 3면 8행까지이다. 능비의 건립 및 수묘인에 관한 마지막 부분은 제3면 8행부터 제4면 9행까지이다.
 

#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비

이 비는 414년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웠으며, 응회암 재질로 높이가 약 6.39미터, 면의 너비는 1.38~2.00m이고, 측면은 1.35m~1.46m로 이지만 고르지 않다. 대석은 3.35×2.7m 이다.네 면에 걸쳐 1,775자가 화강암에 예서로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 150여 자는 판독이 어렵다.

내용은 대체로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왕의 업적이 주된 내용이며, 고구려사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가 된다. 또한 전한 예서의 서풍으로 기록되어 있어 금석문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이 비석은 조선 후기까지 확인이 안되다가 청의 만주에 대한 봉금제도가 해제된 뒤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비석이 발견된 소식이 알려지자 여러 서예가나 금석학자들이 탁본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보다 정교한 탁본을 만들기 위해 불을 피워 비석 표면의 이끼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비면의 일부가 훼손되었고, 또한 석회를 발라 비면을 손상시킴으로써 이후 연구에 논란을 일으켰다. - 위키백과 -


# 충북 음성군 생극면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비


음성 큰바위얼굴 조각공원 설립자인 "현대정신병원" 정근희 이사장은 이런 상황이 있을것이라는 것을 예견이라도 했듯이 3년간에 걸쳐 장수왕,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양만춘, 연개소문의 거대한 조각상과 광개토대왕의 비를 현지에 원형크기와 모양을 똑같이 조각하여 나란히 세우게 되었다.

또한 광개토대왕비는 일본 역사학계에서 편찬한 도서와 중국, 한국도서를 참조하여 원비석의 탁본을 기초로 제작하였으며, 비석 중량만 43톤과 좌대 22톤을 포함하면 65톤의 무게이다. 비의 원본 글자는 1775자 이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국의 불리한 문자를 임의로 135자를 마모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의 염원이 담긴 광개토대왕비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한자와 한글판으로 조각된 2개의 비가 3년여 기간에 걸쳐 고구려인의 기개가 담긴 장엄한 모습으로 우뚝 섰다. 요즘 중국의 역사왜곡의 논란이 심화되는 시점에 누구나 쉽게 해독할 수 있는 한글판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져서 더욱 관심을 받고있다.

이로서 우리가 역사책에서만 읽었고, 말로만 드던 장엄한 광개토대왕비를 이곳에서 볼수 있어서 국민의 한사람으로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고구려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도록 조각상을 세운, 음성 큰바위얼굴 조각공원 설립자 정근희 이사장의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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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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