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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제천으로 향하는길은 다릿재를 지나고 굽이굽이 예순 굽이길의 박달재를 넘어, 급격한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제천시의 관문에 나지막 한곳에 도달하면 자양영당이라는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서 작은 고개를 넘어서니 마을이 보인다. 이곳에서 죄측으로난 시골 농로길을 따라서 한참 들어간다.

자양영당은 구한말 쓰러져 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한 목숨 바쳐서 풍운을 막아보고자 분연히 일어섰던 조선 의병의 넋이 흐르는 곳으로서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자리잡고 있다.자양영당은 의암 유인석 의병대장을 중심으로 지방 유생과 농민이 외세의 침입에 항거하여 구국의 가치를 높인 호좌의병항쟁의 발상지다.


자양영당은 "격고팔도열읍"과 "격고내외백관"을 전국에 포고하야 의병봉기의 정당성을 천명함으로서 훗날 해외항일 독립운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던 을미 의병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의암 유인석선생의 고택과 의병기념탑이 건립되어 있으며, 제천의병전시관에는 당시 의병장들과 유물을 전시하여 후손들의 그 숭고한 뜻을 기릴수 있도록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마주치는 이 부조는 영국 ‘데일리 메일’ 신문사의 ‘맥켄지 기자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찍은 의병들의 모습 사진을 부조로 표현한 것임. 상부의 ‘의(義)’자는 의병장 의암 유인석의 친필을 형상화하여 표현했다.
 

이 코너는 당시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등 국난에 처하여 장담의 선비들이 장담에 모여 앞으로 처신할 방향을 논의하는 광경을 미라클글라스와 프로젝트, 및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다.

당시 모친상중이라 상복을 입은 유인석을 중심으로 장담의 선비들이 모여 처변삼사를 논의하는 모습을 표현하였고, 영상을 통해 처변삼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유중교선생이 쓴 문장집 "서사아중" 과 신광묵이 쓴 자양영당에서 시행했던 향음 주례의 시행절차를 적은 "음례홀기"


1896년 5월 25일 있었던 남산전투를 디오라마화하여 구성한 것이다.두루마기를 입고 군사를 독려한 안승우는 대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알고도 끝까지 항전하며 순국하였으며, 그의 종사 홍사구도 스승 안승우를 쫒아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신현국의 문집인 "직당집" 과 습재 이직신이 편찬한 제천의병 관련 거의록 "척화거의 사실대략"


전시실에는 코너별로 구분되어 있으며, 안쪽에 별도의 의병장실에는 의병들이 남긴 각종 유품을 전시하고있다.
 

자양금은 충청북도 민속자료로 성재 유중교가 사용하였으며, 유인석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부터 화서집, 중암집, 성재집은 문집이며 오른쪽의 주발과 벼루 붓등은 습재 이소응선생의 유품이다.



"의암집"은 의병대장 유인석선생의 문집을 보유자 유성균님으로 부터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로 부터 받은 건국훈장들, 고 김상한, 고 최대옥, 고 이기진 3명의 건국훈장도 전시되어있다.


송원화동사합편강목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국의 송ㆍ원, 우리나라 화동(고려)의 역사를 편집 정리한 목판으로 당시 화서문인들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그밖에도 여러권의 문집과 송자대전, 자양영당 분향록등 소중한 역사적 자료가 보존되고 있다.


제천의병의 사적지 코너에서는 제천의병이 남긴 사적지를 지역별로 구분 소개하고 있으며, 에칭유리에는 의병의 남긴 글귀를 통해 의병활동의 결의와 고난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천의병 창의지 제천의병기념관 앞쪽에 건립한 제천의병 기념탑은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구국의 일념으로 목숨을 바친 제천의병의 숭고한 의병정신을 기리고 오늘날의 시민정신으로 승화시켜 정신교육의 도장으로 삼고자 건립하였다.

기념탑은 제천의병이 한말 의병항쟁의 상징적 존재였음을 뜻한다. 전체 구조는 주탑과 주변구조물 그리고 3개의 인물조각으로 구성하였다. 중앙의 주탑은 의병이념을 상징하고 좌우에는 그 당시의 민중운동을 생생하게 묘사한 조각으로 의병정신과 의병항쟁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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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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