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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를 벗삼아 봄을 느끼곤 했다.
내가 태어날 당시는 요즘에 와서야 알게 되었지만 소위 말하는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사람이란다.
도시에 아이들은 책가방 메고 운동화 신고 학교 다닐때, 우리는 책보를 어깨에 둘러메고 검정고무신이 전부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앞산 뒷산에 우거진 나무와 앞내울에 흐르는 물줄기와 들판에 보이는 풀과 돌들도 모두 친구였다.

따사로운 오월 하순에 접어들면 어김없이 향기가 그윽한 아카시아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방과후 10살 남짓한 아이들 너댓명이 10리길이나되는 신작로를 따라 귀가하는길이지만 세월아 네월아 급한게 없다.
지나가는 행인들 넘어지도록 신작로 복판에 수북하게 난 풀포기 매듭을 여기 저기 만들어 놓고 낄낄대며 장난도 친다.

그러다가 신작로가에서 커다란 아카시아나무가 보인다.
누군가가 수년간 가꾼탓에 아랫쪽은 매끈하고 가마득한 높이에 하늘이 보이지 않을만큼 아카시아잎이 우거져 보인다. 
아이들은 전봇대 높이 만큼이나 높은 아카시아나무를 처다보면서 하얗게 피어난 꽃을 보면서 하나같이 입맛을 다신다.

아카시아꽃을 딸 수 있다면 그윽한 향기를 만끽하며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을텐데.......
그러다가 한 아이가 말을 꺼낸다.
야! 우리 저기 아카시아꽃 따 먹을까?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서 서로 얼굴을 처다보면서 화색이 돈다.


너 저 나무에 올라 갈 수 있어?
여나므살 남짓한 남자 아이들, 키냐고 일미터 반도 안되는 땅콩만한 녀석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그중에 제일 자그마한 친구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기둥을 안고 다람쥐 마냥 나무를 올라서 나무가지에 도달했다.

아카시아나무 중간쯤 가지를 밟고 올라간 친구는 손에 잡힐듯 말듯한 꽃송이를 따서 아래쪽으로 던진다.
나무 아래서 아이들은 신기한듯 처다보고, 아카시아 꽃송이가 떨어지길 기다리며 고개를 뒤로 바싹 제킨다.
이쪽이야! 이쪽으로 던져! 아이들은 아카시아 꽃송이가 떨어지길 기다리며 두손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는 한송이라도 더 받으려고 두팔을 벌리고 아카시아나무 위에 친구의 행동을 주시한다.
이렇게 한송이 한송이를 모아서 책보위에 수북하게 아카시아꽃이 쌓일때쯤 친구는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새 하얗고 향기가 그윽한 아카시아꽃 송이를 움켜잡고 배고픈 염소마냥 마구 뜯어 먹기 시작한다.

아카시아꽃을 몇송이씩이나 뜯어 먹은 친구들은 이제야 허기를 면한듯 딴전을 피운다.
아카시아 꽃송이와 함께 꺽어진 나뭇가지의 아카시아 잎줄기를 가지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내기를 하고 있다.
가위 바위 보를 크게 외치며, 이긴 친구가 아카시아 입줄기에서 한개의 입을 따서 버린다.
또 가위 바위 보가 계속 되면서 어느덧 손에 쥐고 있는 아카시아 입이 하나하나 바닥에 떨어지고 줄기만 남는다.

그시절 우리는 자연과 벗삼아 들판에 보이는 모든것이 놀이감이요 즐길거리였다.
떨어진 아카시아잎을 입안에 넣고 음정도 안맞는 풀피리를 불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10리길 집에 도착한다.
그리고 마을에 도착해도 각자 집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마을 복판 신작로에서 비석치기 구슬치기로 시간가는줄 모른다.

따스한 봄날에 잠시 오랜 옛날의 추억속으로 깊이 묻혀 보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지금부터 40년이 넘는 그시절 그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동안 시간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보니, 나는 지금 소도시의 산책코스에서 멍하니 아카시아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카시아의 추억을 회상해보니 40년이 넘어도 변함없이 새 하얗게 그리고 향기가 그윽하게 피어나고 있건만............
오호 통제라! 그시절이 어제련만, 머리는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엔 어느덧 주름이 가득한 중년으로 변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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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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