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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은 647년 선덕왕때 자장 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이곳에 선방을 짓고 머물렀던 자장 율사는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 관음보살의 도량임을 나타내기 위해 관음암이라 이름 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 초기 1445년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이곳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하기도 한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후 1548년 명종때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가 불교중흥의 큰 뜻을 품고 이곳에서 기도하던 보우스님이 선종판사가 된 직후 이곳을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 있어서 백담사와 더불어 오세암은 금강산에서 수도하여 도력을 성취한 스님들이 중생교화를 위해 한양으로 갈 때 반드시 머무르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또한 조선중기 1643년 설정스님이 중건하면서 관음암에서 지금과 같이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조선후기 1888년 고종때 백하 스님이 중건하면서 1만일을 기한으로 염불정진하는 만일염불회를 열기도 하였다. 그 뒤 6ㆍ25전쟁으로 모든 전각이 불타 없어졌으나 근래에 관음전 등을 비롯하여 삼성각ㆍ요사 등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세암 가람구성은 구법당 구역과 관음전 구역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구 법당 구역은 지금은 요사로 함께 쓰고 있지만 예전에는 법당이었던 건물과 바로 옆에 붙은 요사, 그리고 구 법당 맞은편에 있는 종무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약간 비스듬히 경사진 마당을 10미터 가량 내려가면 관음전 구역이 있다. 최근에 새로 지은 관음전을 중심으로 그 앞 왼쪽편에 범종각이 있고, 다시 그 왼쪽 지역에 일반신도와 탐방객들이 머무르는 요사인 문수동과 보현동 시멘트 건물이 있다.

오세암의 금당으로 관음전은 팔작지붕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인데, 그 전에는 지금 인법당인 전각이 금당이었다. 안에는 최근에 봉안한 관음보살좌상이 불단 위에 있고, 그 왼쪽에 마련된 불단에 설화에 등장하는 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오세암은 백담사의 부속암자로서 백담계곡을 따라 영시암까지 간 뒤, 고개를 하나 올라서면 오세암과 봉정암으로 갈리는 첫 이정표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오세암 방면 산길로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 오세암은 백담사에서 약 10km 지점에 있는데 걸어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영시암망경대를 거쳐 마등령 고갯길로 6km 정도 가면 오세암에 이르게 된다.

백담사 부속암자들은 백담계곡을 끼고 설악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속세에 물들지 않은 오솔길을 따라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또한 이 암자들은 설악산을 오르는 등반객들이 암자의 경내에 들어서서 시원한 약수물 한바가지씩 마시고 잠시 쉬어가는 안식처이며 또한 지친 나그네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정표와도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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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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