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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향일암은 해를 바라보는 암자라는 뜻이지만, 온 몸으로 해를 맞이하는 암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점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백제의 영토였을 남도의 끝자락에 사찰을 세우게 된 연유는 알 수 없다. 향일암은 전국 4대 관음 기도처 중의 한 곳으로 644년 백제 의자왕 4년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원통암이라 불렀다.

고려 광종 9년(958)에 윤필거사가 금오암으로, 조선 숙종 41년 (1715년)에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개칭했다. 이 곳은 원통보전, 삼성각, 관음전, 용왕전, 종각, 해수관음상을 복원, 신축하여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는데 2009년 12월 20일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원통보전), 종무소(영구암), 종각을 2012년 5월 6일 복원하여 낙성식을 가졌다.

마을에서 향일암을 오르는 길은 초입부터 제법 가파르기 때문에 노약자들은 오르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초입에 급경사로를 조금 올라서 매표소를 지나면 좌측의 급경사 계단길과 우측의 경사로로 돌아 오르는 길이있다.

매표소 뒤쪽으로 계단길도 있지만 경사도가 만만치 않아서, 우측으로 난 우회로를 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다.

향일암을 오르는 우회로의 마지막 구간은 여간 가파른 경사가 아니다. 급경사 구간을 힘겹게 올라서면, 우측으로 보이는 솟을대문을 가진 건물은 향일암의 종무소로 보인다.

암자근처에 이르면 집채 만한 거대한 바위 두개 사이로 난 석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곳이 다른 사찰의 불이문에 속하는 곳이다.

암자로 통하는 좁은 바위굴을 통과하면 향일암 마당으로 사용하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는 난간대 아래쪽에 펼쳐지는 드넓은 푸른바다를 시원스럽게 조망할 수 있는곳이다.

난간대에서 조망을 하면서 아랫쪽을 보니 작은 건물의 지붕위에는 12지신 띠동물이 재미있게 조각되어 있다.

향일암을 오르기전에 잠시 돌아본 해안가 마을이 이곳에서는 내려다보니 아련하게 멀리 조망되고 있다.

대웅전의 지붕위로 멀리 조망되는 금오산에는 전설이 전해지는 왕관바위,경전바위,학사모바위,부처바위가 있다.

암자의 의미는 남해 수평선의 일출 광경이 장관을 이루어 향일암이라 하였으며, 또한 주위의 바위모양이 거북의 등처럼 되어 있어 영구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웅전의 좌측에 보이는 작은 건물은 종각으로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고 최근년에 복원된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구에서 절묘하게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가는 길은 가슴이 툭 터지듯 절벽 사이 넓은 자리에는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 뒤편으로 숨은 듯 작은 바위 길을 따라가면 바다를 바라보고 자리한 관음전과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다.

향일암이 위치한곳은 거북이 모양을 한 영구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에 작은 돌거북이 많이 보인다.

용왕전 뒤쪽으로 평평한 바위를 돌아보니, 수십마리의 돌거북이 줄지어 있고 거북이 머리와 등에는 동전이 즐비하다.

소원을 빌기 위해 대웅전과 용왕전 사이에 바위와 관음전 뒷편 큰 바위에 동전을 붙이거나 동전을 올려놓기도 한다.

향일암을 돌아보고 출구로 나가는 길도 역시 좁은 바위굴이기에, 시점에서부터 조심스럽게 빠져나간다.

향일암에는 7개의 바위동굴 혹은 바위틈이 있는데 그 곳을 모두 통과하면 소원 한가지는 반드시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까지 향일암 일출제가 열리고 있어 이곳 일출 광경을 보기위해 찾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남도의 바다 위로 촛불을 켠 듯 어둠을 밝히는 향일암의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한다. 태양의 아름다움은 눈이 시리도록 거침없이 탁 트인 남도의 바다를 바라보게 만든다는데.....

향일암은 바닷가에 위치하면서도 염분이 없어 끈적거리지 않아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향일암 앞 마당에서 아득히 수평선까지 시야에 담는 남해바다의 시원함이 통쾌하기 이를데 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 바라는 모든 일들을 소망하고 드넓은 바다처럼 넉넉한 마음을 가슴에 가득 담아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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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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