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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파주를 지나다가, 파주삼릉을 답사하게 되었다. 국사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관심이 있었기에 조선시대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당대의 역사이야기를 하고자한다. 사실 국사공부 억지로 하려면 머리가 복잡하지만, 사적지 답사를 하면서 그시대의 이야기를 듣고나면 머리속에 쉽게 기억할수 있을것이다. 어떻게보면 그당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알수없는 미스테리가 더 많지만, 그래도 문헌에 남아있는 이야기를 머리속에 되새기며 당시 왕실에서 벌어진 음모와 갈등 그리고 파란만장한 조선시대의 역사를 살짝 엿보기로한다. 

파주 삼릉이라고 일컫는 공릉, 순릉, 영릉 중 공릉과 순릉은 공통점이 있다. 이 두 능에 잠든 예종 비 장순왕후, 성종 비 공혜왕후는 모두 한명회의 딸로서 친가에서는 자매지간이지만, 시가인 왕실에서는 숙모와 조카며느리가 되는 사이였다. 두 딸을 모두 왕가로 출가시킨 한명회는 당대 보기 드문 지략가였다. 그 권력으로 자매가 나란히 왕비에 오른 예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로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당시 한명회의 권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주삼릉'은 경기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1리 소재에 있으며, 통일로(1번 국도) 장곡 검문소를 지나 파주삼릉 안내 표지판이있다. 통일로 주변으로 위치한 파주의 삼릉에서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잠들어 있는 왕족들의 슬픈 내력과 애처로운 사연들이 여전히 묻어나고 있는곳이다.

 
삼릉을 이루고 있는 공릉, 순릉, 영릉에 잠들어 있는 조선조 8대 예종 원비 장순왕후, 9대 성종 원비 공혜왕후, 영조의 맏아들이며 사도세자의 형인 추존왕 진종과 효순소황후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곳이다.
 

파주삼릉에 입장하여 좌측으로난 철망울타리 안쪽의 숲길을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홍살문 안쪽으로공릉의 제실과 비각이 보이고, 그 뒤쪽에는 묘가 자리하고 있다. 공릉은 조선 제 8대 왕 예종장순왕후(章順王后)의 능이다. 조선 8대 예종의 세자비인 장순왕후 한씨는 당대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세째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세자빈에 책봉된 지 1년 7개월만에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인해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승하하였다.


# 공릉의 제실과 비각


# 공릉의 제실 외부


# 공릉의 제실 내부


# 공릉의 비각


# 비각 안쪽에 있는 비석


조선 제 8대 왕
예종장순왕후의 능이다. 공릉의 장순왕후는 한명회의 셋째딸로서 왕실로 출가하였지만,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단명하였다.



순릉은 우측 검표소를 지나서 가운데길로 들어서면 순릉이 보이는데, 홍살문을 통과하여 안쪽으로 들어서면, 제실과 비각이 보이고 뒤쪽으로 묘소가 있다. 순릉은 조선 제 9대 왕 성종공혜왕후(恭惠王后)의 능이다. 한명회의 네째딸로서 12세의 나이로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과 가례를 올려 천안군부인이 되었다. 그러나 왕비의 자리에 오른 지 5년 만에  열아홉의 나이로 소생 없이 창덕궁 구현전에서 승하하였다한다.


# 순릉의 제실 외부


# 순릉의 제실 내부


# 순릉의 비각


# 순릉 비각 안쪽의 비석


순릉은 조선 제 9대 왕 성종공혜왕후(恭惠王后)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넷째딸로서 왕실로 출가하였지만, 꽃다운 19세의 나이에 단명하였다. 


순릉을 돌아보고나서 입구쪽으로 내려서면 영릉이 보이는데, 홍살문 안쪽으로 길게 걸어 들어가면, 제실이 있으며, 우측으로는 비각이 있다. 이곳은 2동의 비각이 배치되어 있으며, 제실 뒤쪽으로는 두개의 봉분이 보이는 묘소가 보인다. 영릉은 조선 추존왕 진종효순왕후
(孝純王后)의 능이다. 진종: 사도세자의 형은 영조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영조가 즉위하자, 경의군에 봉해지고, 7세의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1살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 영릉의 제실 외부


# 영릉의 큰 비각


# 영릉의 비각 안쪽에 비석


# 영릉 비각 안쪽에 비석


# 영릉의 작은 비각


# 영릉 비각 안쪽에 비석


영릉은 조선 추존왕 진종효순왕후(孝純王后)의 능이다. 진종은 사도세자의 형으로 11세에 단명하였지만, 사도세자를 폐위시키고, 양자를 입적시켜 왕통을 잇게 하기위해 진종으로 불리웠다.



파주삼릉을 답사하고 나오면서 머리속에는 조선시대의 역사가 아련하게 그려지면서, 왕실을 둘러싸고 있는 절대권력가인 한명회가 제일 뚜렸하게 떠오른다. 궁지기로 시작한 벼슬이 세조의 왕권찬탈에 1등공신으로 인정받아 영의정까지 오르면서, 두딸을 한꺼번에 왕실에 출가시키는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두딸들이 왕비로서의 부귀영화를 얼마 누리지 못하고, 피지도 한 아름다운 꽃이 17세와 19세에 단명하는 비통은 권력도 어쩔수 없었다.

그는 한평생 권력과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두 딸을 먼저 보내고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사건에 연루되었다하여, 죽은뒤에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를 당하는 변을 겪기도 하였다. 참으로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인 음모는 어디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도 아리송 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유익한 정보라고 생각하시면, view on을 꾸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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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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