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서 고양으로 지나는 도로변 공원에 베트남전쟁 참전비가 보이고 좌측에 최영장군묘라는 표지판이 보인다.최영장군 묘소를 답사하기 위하여 약3km정도 마을길로 가다보니 성령대군 사적지라는 안내판이 나란히 보인다.이곳에 답사를 갔을때 최영장군은 대략 누군지 미리 알았지만, 성령대군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는데 이마을에 사적지를 찾아가서 돌아보면서 안내문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성령대군은 조선조 제 3대 태종대왕의 넷째 아들로 양령,효령,충령(세종대왕),대군의 친동생이며, 1405년에 태어났으며,1417년에 창령 성씨 좌찬성 억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1414년에 대군에 봉해졌으며,부인은 삼한국 대부인의 품계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롭고 대도가 단정하여 부왕의 총애를 받았으며,대광보국 승록대부의 위계에 올랐으나 1418년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나니, 그때 나이가 14세였다고 한다.

이사진은 성령대군 사적지 전체적인 조감도이며,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산69-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향토유적 제 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마을길 바로 옆에 성령대군 제실과 관리소이며, 우측 벽면에 사적지 조감도와 안내문이 있다. 

 제실을 지나서 도로를 따라 50m 정도 들어가면 대자사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사당으로 들어가는 솟을 대문이 보이는데 삼문이라 한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3개로 구성되어 있어서 삼문이라는 하는것 같다. 

대문 안쪽으로는 대자사라는 사당이 보이기에 들어가 보려고 하니
입구에 대문이 잠겨져 있어서 밖에서 들여다 보았더니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사당의 우측으로는 비각이 있으며
3개의 비석이 보이는데 멀리서 보니 내용이 무었인지는 알수가 없다. 

 비각의 좌측으로 성령대군 묘역 및 신도비라는 비석이
크게 세워져 있는데, 울타리 밖에서 들여다 보니 글자를 판독할수가 없었다. 

 사당은 밖에서 대략적인 배치도만 살펴보고나서,
울타리 좌측으로 보니 성령대군 묘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산위를 처다보니 천국으로 가는 계단 마냥 하늘과 맞 닿은듯 계단이 길게 보인다. 

 계단을 따라서 한참 올라가니 주변이 무척이나 넓게 보인다.
맨 앞쪽의 묘소는 주변에 석물들과 비석이 두개가 세워져 있는데
맨 앞쪽에 보이는 묘가 원천군의 부인인 한양 조씨 묘이고, 바로 뒤쪽에 원천군의 묘가 있다. 

효령대군은 7남을 두었으며 성령대군의 제사를 모시고 있던
여섯째 아들 원천군을 아우 성녕대군에게
출계시켰으며 손자 33인, 증손자 109인으로 후손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원천군의 묘소 뒤쪽에 있는 성령대군 묘소가 보인다.
조금 오래되어서 그런지 원천군의 묘소 보다는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령대군이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이를 몹시 비통해 하여 친히 제문을 지으시고 분묘 옆에 대자암을 지어대군의 명복을 빌게 하였으며, 원래 산리동이란 지명을 대자동이라 명명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대자암은 임진왜란때 소실되고 터만 남아 있다고 한다.

 사적지를 돌아보면서 성령대군 사적이라고 알고 답사를 하였는데,사적지에 그것도 성령대군의 묘소 앞쪽으로 차지하고 있는 원천군과 그의 부인 묘소가 자리하고 있어서 갑자기 혼돈이 되기 시작했다. 성령대군과 원천군과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 각종자료를 여기저기에서 한참 동안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해서 서투른 필자가 조선시대 역사를 쉽게 이해할수 없었기에 더욱 어려웠다.성령대군은 조선조 태종의 넷째 아들이며 후사가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둘째 형인 효령대군의 여섯째 아들 원천군을 성령대군에게 입적시켜 대를 잊도록 하였다는데, 역사를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Posted by 털보아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