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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삶의 터를 정하지 않았다.바람과 물,주변환경과 지리,인심까지 두루살폈다.흔히 얘기하는 풍수는 바로 이런 것들을 살펴보고 살아갈 집터를 결정하는 편이다.외암리 민속마을에 가보면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삶의터를 정해 수백년을 살아왔는지 읽을수가 있다.외암민속마을에 들어가 보면 생동감이 있는것은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건축은 주변환경이나 경관속에 사람이 어우러져 살고 있을때 생동감을 지니게 되며 가치가 살아 있는 것이다.

외암 민속마을은 중요 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어있고, 아산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설화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있다.약500년전에 강씨와 목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나,지금의 외암마을은 조선조 선조때부터 예안이씨가 정착하면서 예안이씨의 집성촌이 되었고,그후 예안이씨들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양반촌의 면모를 갗추게 되었다.성리학의 대학자인 외암 이간선생이 마을에 살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호인 외암도 마을이름에서 따온것으로 전하여진다.

외암마을에는 충청지방 고유 격식을  갖춘 반가의 고택과 초가,돌담,정원이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다량의 민구와 민속품이 전해내려온다.가옥 주인 관직명이나 출신지명을 따서 참판댁,감찰댁,교수댁,참봉댁,종손댁,송화댁,영암댁,신창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으며 마을 뒷산인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끌여들여 연못의 정원수로 이용하는등 특색있게 꾸민 정원이 유명하다.마을내에는 총 6.000m의 자연석 돌담장길이 보존중이며 돌담으로 연결된 골목길 및 주변의 울창한 수림이 마을 경관을 더욱 고풍스럽게하고 있다.

 외암민속마을 입구는 작은 하천위에 놓여져있는 다리를 건너면 마을로 갈수있고 좌측으로 들어서면 외암민속관을 만날수 있다.이곳에는 상류층,중류층,서민층 가옥 12동을 주축으로 조선시대 신분별 주거공간을 재현하고 있으며 주거용구류,부엌살림류,농기구류,기타소품류등 각종 생활 공예품 1.000여점이 전시되어있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좌측으로 들어서면 하천가에 커다란 반석이 있으며 반석에는 외암동천(巍岩洞天)과 동화수석(東華水石)이라는 글자가 한문으로 커다랗게 새겨져 있고
바로 옆쪽에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면서 옛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외암민속관 입구쪽에는 각종 상설 체험장이 있는데 이곳은 떡 메치기 체험장으로 옛날에 찹쌀을 가마솥에 쩌서 반석위에 놓고서 떡메로 내리처서 인절미를 만들던 모습을 재현하고 또한 맛을 볼수있는 체험장이다.

 떡메치기 바로 옆에는 국악상설 공연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에 콘크리트로 포장한 낮은 무대를 만들어 놓고 있으며 때로는 한바탕 사물놀이의 놀이마당이 벌어지기도 하며,
한여름에는 나무그늘아래서 시원한 쉼터 역할도 한몫하고 있다.

 조금더 옆으로 가보니 옛날 동구밖에 세워져있던 장승들의 모습이
각각의 특이한 모습으로,나무를 꺼꾸로 세워놓은것도 보였다.

 민속마을 홍보관에는 50석규모의 홍보영화 상영관에서는 15분짜리 홍보영화를 관람할수 있으며, 외암마을 소개 및 중요민속자료 설명등을 보면서 이해할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홍보관의 따른 전시실에는 이마을에서 촬영한 각종영화들의 장면들의 포스터가 가득메워 있으며,태극기 휘날리며,클래식,소름,꼭지,임꺽정등 많은 영화들이 이마을을 배경으로 촬영한 한곳을 소개하고 있다.

 민속관내에는 옛날 건축양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상류층 주거형태의 집의 모습과 중류층,서민층 가옥의 형태를 각각보여준다.

 상류층이 살던 가옥 옆에는 여유롭게 풍류를 즐길수있는
정자각도 지어져있고 그아래는 작은 연못도 설치되어있다.

 중류층 신분이 거주하던 주거형태는 훨씬 단순하며,
안방 윗방 사랑방,부엌이 한곳에 오밀조밀 한채에 붙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은 제사를 모시는 사당으로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며,
4대 조상(부모,조부모,증조부모,고조부모)의 신주를 봉안한다.

 이곳은 전통혼례 체험하는 곳으로 가족,연인,신혼부부들이 기념행사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수 있도록 미리 신청하면 예식을 할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으며,
평소에는 이곳에서 혼례복을 빌려입고 기념촬영도 할수있다.

 최근에는 정말 보기힘든 물건이다.결혼식날 시집가는 신부가 타고오는 가마는 4명이서 들고서 이동하는데,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이 가마를 타고 마을을 한바퀴 돌면서 옛모습을 재현하기도한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수령이 약 600년된 느티나무가
21m 높이 둘레 5.5m 크기로, 비스듬이 누운듯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 가옥은 건재고택(영암댁) 이라고 하는데 충정지방의 대표적인 반가로 건재(이욱렬)의 호를 따서 건재고택이란 택호가 붙었으며,행안부지정 "정원100선"으로 선정된 정원이 있으며 이간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있다.

 이곳에는 옛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디딜방아가 보였다.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이 발로 밟아서 방아를 찧던 모습이 선하다.

 교수댁으로 불리는 가옥인데 이사종의 13세손인 이용구가 성균관 교수를 지냈다고 하여 붙은 택호이다.이집의 정원은 건재고택,송화댁과 함께 외암마을을 대표할만 하다고 하는데,요즘도 후손들이 살고있는데 내부를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참판댁 앞쪽에는 옛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연자방아가 있었다.우리들의 조상들은, 연자방아의 바닥에 곡식을 깔고 소를 이용해서 거대하고 무거운 둥근돌을 굴려가면서 곡식의 가공하던 곳이다.그밖에도 이마을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다량보유하고 있고,아직도 후손들이 대를 이어서 살고있으며 56가구가 살아가고 있는 생생한 마을은,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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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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