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 매표소와 안내문이 있다.
솟을 대문이 보이고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는 전형적인 양반주택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ㄱ자형의 사랑채가 보인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방문 위에 걸린 추사의 친필 당호를 가만히 올려다보면,
죽로지실(竹爐之室), ‘차를 끓이는 죽로가 있는 방’이란 뜻으로,추사가 친구인 황상에게 써준 다실 이름이다.
사랑채 댓돌 앞에 세워진 이돌기둥은 해시계 받침 용도로 쓰였으며,
석년(石年)이라는 글씨는 추사 선생의 아들인 상우가 추사체로 쓴 것을 각자했다고 한다
사랑채 방에 불을 때기위한 아궁이
뒤뜰로 돌아가자 굴뚝이 보인다.
세한도는 1국보제 18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844년 안당나이 59세 때,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이 정성을 다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으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음에 세한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으로,완당 선생의 명작이다.
사랑채 안방에는 예서십곡병풍이 보인다.
사랑채를 왼쪽으로 돌아나오면 뒤쪽으로 안채가 이어진다.
안채는 ㅁ자형 구조로 되어있다.
안채의 내부구조는 ㅁ자형으로 전형적인 양반주택이다.
안채에도 여러점의 추사 글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무량수" 한없는 수면이란 뜻으로 불교의 윤회설에 입각하여 쓴글이다.
안채 뒤쪽 사당에는 김정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사랑채 쪽문으로 나오면 우물이 있다.
고택의 왼쪽편으로는 완당 김정희묘가 있는데,
석상과 망주석1쌍이 있고,묘비는 1937년 9월에 세웠는데,종인 김승열이 짓고 썼다한다.
고택의 오른쪽으로 가보면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가 있으며,비문에는 영조의 어필이 새겨져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도지정문화재자료인 추사의 묘를 시작으로 추사고택을 지나면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쉬었다 갈 수 있는 작은 공원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조금 더 걸으면 시원한 잔디 밭 위로 김정희 일가의 묘가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추사의 증조할머니였던 화순옹주의 열녀정문이 남아 있다.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가 남편 김한신이 38살의 젊은 나이에 별세하자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을 뒤 따라갔다 해서 세운 열녀비이지만 지금은 대문만 남고 그 안에 정각은 없어져 버렸다. 한편 영조가 딸이 식음을 전폐하는 것을 말렸으나 끝내 말을 듣지 않고 죽어버리자 열녀비를 내리지 않았으나 이후 정조가 열녀비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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