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골매표소를 지나서 태백산 진입로로 들어서 좌측으로 처다보면 가파른 돌계단이 보이며 계단의 우측으로 "단군성전" 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비탈에 서 있지만,등산객들은 일행들과 어울려 가다보면 지나처서 못 볼수도 있다.단군성전이란, 우리민족의 영산인 태백산 아래 우리 겨레의 시조인 단군의 영령과 영정을 봉안한 성전으로서,1975년 국조단군봉사회가 구성되어 1982년 회장 김대년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성금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1993년 태백산도립공원 개발계획에 의거 성전을 개축하여 국조단군봉사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단군 제례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당골계곡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의 좌측으로 단군성전이란 표지석이 보인다.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서 올라서면 넓은 뜰이 있으며,정면으로는 성전의 대문이, 우측으로는 국조단군상이 있다.
이 성전은 우리 겨례의 시조 되시는 단군 할라버님을 모신 성역으로서 그 이름을 단군성전 이라고 부릅니다.성전 안에는 단군 할아버님의 영령과 영정을 보안하여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성전 경내외에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는 국조 숭모의 참 뜻을 되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올라서니 넓은 뜰이 있으며,
앞쪽으로 대문이 보이고 기와지붕으로 둘러처진 담장 안쪽으로 단군성전이 보인다.
참배객들은 우측의 단군상을 향해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을 하거나 고개 숙여 묵념을 하는 모습들을 볼수있다.
앞뜰에 의젓한 자세로 앉아 있는 국조 단군상이 있으며,
국조단군상은 신라시대 화가 솔거가 그렸다고 전하는,
단군조선 제1대 한배검님의 영정을 원형으로 해 조각가 이홍수씨가 제작하였다고 한다.
뜰에서 단군상을 참배하고 대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서니,
넓은 마당을 지나서 안쪽에는 성전건물의 열린 방문 사이로 단군의 영정이 멀리서도 보인다.
단군성전은 등산로 옆에 있어서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많이 참배하고 있다.
단군성전의 입구에 걸려있는 현판은 신덕선이 쓴것이라고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었다.
단군에 대한 기록은 고려후기 일연선사가 지은 삼국유사와,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에 따르면 천제 이던 환인의 아들 환웅이 홍익인간의 큰 뜻을 품고,권위의 상징인 천부인 세개를 지니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를 건설하고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세상을 다스렸다.그 아들 단군왕검은 아사달에 도읍하고 조선을 개국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국조단군은 반만년 역사의 상징으로서 과거 외세침략과 잦은 국난을 극복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었다.특히 단군 왕검이 건국이념으로 선포한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이념은 우리민족 정신의 정수로서 유교의 인, 불교의 자비심과 같이 전 인류의 이상과도 합치되는 것으로 인류공영을 위한 위대한 세계적인 유산이다.
단군신화가 한 민족이라면,종교적 이념을 떠나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잡은 우리민족의 뿌리 깊은 건국사상이다.곰이 여자가 되어 낳은 사람이란 태생 자체가 극히 신화적인 존재로 다가오는 국조 단군이지만,우리 겨레가 가슴으로 느끼는 국조을 모시는 곳이 단군성전이다.
홍익인간을 내세운 국조 단군의 참 뜻은 종교나 이념을 떠나 우리민족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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