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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지 답사를 다니다 보면 사찰에는 역사 깊은 유적들이 많이 있다.
이번에 답사한 곳은 충남 천안시 풍세면 태학산 자락에 위치한 법왕사이다.
전국 몇군데에 동명사찰이 있으나, 이곳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특이한 천연동굴과 마애불이 있는것이 특징이다.
태학산 휴양림을 지나서 정상을 향하는 등산로 입구에는 좌측으로 태화사와 우측으로 법왕사가 보인다.우측의 법왕사에는 금강동굴 기도 도량이라는 천연동굴 속에 암반을 양각화하여 새겨진 마애석불이 있으며, 법왕사를 지나서 조금 더 산중턱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에 불상을 양각으로 새겨진 천원 삼태리 마애불이 내려다 보고있다.
  

이곳 태학산 기슭에 자리한 법왕사는 지금으로부터 고려말 공민왕 때 세워진 해선암으로서 태학산 최초로 창건된 동굴속(년대미상 마애석불 현 약사여래불)을 옛스님이 신앙의 모태로 의지하며 기도와 수행 정진하면서 산등 정상위에 세워진 마애불과 천연동굴속의 마애석불이 풍화작용으로 파묻힌체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남아 있는 곳이다.1985년도에 사찰명을 법왕사로 사찰명을 변경하고  동굴속에 파묻힌 마애불상 흔적을 증재보수 하였다.중앙으로 대웅전에 석가모니불과 큰바위 밑에 지장보살전이 봉안되었으며,대웅전밑 암석바위가 깊숙히 패인 웅덩이(인욕바위)는 법왕사 가람불사때 마구비승이 방새 심술로 3년간 중단되어 불사(공사)를 이루지 못해 인욕으로써 정진한 인욕바위이고 도량입구 우측 산정산 중턱에 나한전(산신각)이 같이 모셔져 있다.

 사찰의 입구에는 보이는 거대한 입석바위

 사찰의 입구에 보이는 작은 돌탑들

 사찰은 중년에 재건한 모습처럼 깨끗하며 다른 사찰과 비슷한 석탑과 석등이 보인다.

 이 동굴속의 불상 약사여래상 양식은 지금으로부터 고려말의 중생들의 우환과 스님의 법난이 한참 어렵고 병고액난으로 고통받을때 한가지 소원을 빌면 소원 성취를 이룬다는 상질물로 여겨 최초 태학산 동굴터에 고려말 僧스님 원력으로 동굴속에 부처님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신앙의 모태로 삼고 이 동굴을 안식처로 기도수행정진한 토굴로 사용하였다.

 천연동굴 입구

 천연동굴의 입구는 양쪽의 바위 사이로 좁은 길을 따라서 들어간다.

천연동굴의 좁은 통로를 따라서 2층 동굴로 올라가면
동굴의 바위를 양각으로 새겨놓은 나반존자 불상이 정면으로 보인다.

 

 나반존자 불상과 옆에는 사자인 극락조  

 우측 상단에는 우리나라 토속신앙인 산왕내신

천연동굴의 약사여래 마애석불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에 새긴 불상으로
태학산 중턱의 큰 암반 중앙에 조각한 거대한 입상이 있다.
화강암으로 세워져 있으며 높이가 7.1m이다. 

 

천원 삼태리 마애불이라고 하는데,
얼굴의 표정이 굳어 있고, 눈 꼬리가 옆으로 길게 뻗어있다.
이러한 불상의 조각수법은 고려후기 마애불의 전형적인 형식이며,
불상 위에는 비와 이슬을 막기 위하여 암석에 의지하여 건물을 세웠던 흔적이 있다.  

마애석불의 후면에서 보는 전체적인 모습

 전국에는 수많은 사찰들은 나름대로의 오랜 세월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많은 유적들과 문화제들이 있지만  역사를 잘아는 사학자가 아니고는 어찌 그 깊은 뜻을 이해할수 있을까?
특히 규모가 작은 사찰들은 기록된 내용이 정확하지 않고 추정만 하다보니, 답사하여도 충분한 자료가 없다.

다만 후세에 이곳을 답사하는 사람들은 수박 겉핡기식으로 그런 역사가 있어다 더라 하는 정도로만 이해할 뿐이다.천년의 세월이 흘러가며 어느 순간 사찰이 없어지고, 역사가 아련한 사찰들이 관련근거에 의거하여 추정으로 다시금 재건하게 되지만, 태학산 중턱에 묵묵히 서있는 거대한 마애석불만이 천년의 역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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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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