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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겨있으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년터 4년간에 걸친 복원작업으로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에서 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화성은
18세기에 완공된 짧은 역사의 유산이지만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길이가 약 6km에 달하는 성곽안에는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모든 건조물이 각기 모양과 디자인이 다른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수원화성은 길이가 6km정도로 연결되어 성곽을 중심으로 수원시민들의 모든 생활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 조선시대와 현대사회의 조화를 이루고있다.


수원화성을  꼼꼼하게 돌아보려면 성곽길을 타고 3시간 이상 걸린다. 필자는 화성행궁을 돌아보고 뒷산으로 올라서, 조감도의 좌측 상단표시부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주를 시작했다.


서장대는 팔달산의 산마루에 있는데, 위에 올라가서 굽어 보면 팔방으로 모두 통한다. 수원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며, 사방 백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 자리에서 변화를 다 통제할 수 있다.


서장대에 오르면 이곳에는 순라들이 긴칼을 잡고 성곽을 향해서 감시를 하던 옛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장대에서 내려다보면 수원시가지가 멀리까지 시원스레 조망되며, 마치 성냥곽 쌓아 놓은듯이 작은 집들이 올망졸망하게 보인다.


서노대는 서장대의 뒤에 있는 시설물로서, 쇠뇌를 쏘던 방어시설로 산 정상부에 위치 하여서 멀리까지 관망할수있다.


팔달산 정상에 있는 효원의종은 유형 문화재 제69호로, 관광객들이 스스로 타종하면서 부모와 가족, 개인의 소원을 빌도록 하고있다.


서남암문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만들어 적에게 들키지 않게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공급할수 있도록 만든 군사시설이다.


1794년에 세운 화성의 남쪽 문으로, 문의 이름은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화성의 4성문 중 동쪽문과 서쪽 문에 비해 북쪽문과 남쪽 문은 더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


팔달문은 도심에 사방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성곽이 끊어진다. 성곽을 연결하려면 도로를 건너 직진하다보면 지동시장 입구에서 좌측으로 하천을 따라가야한다.


지동시장 입구에서 좌측으로 조금 내려오면 동남각루 올라가는 가파를 길이 나타난다. 각루는 높은 위치에 건물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동이포루는 치성의 위에 지은 집으로, 치성에 있는 군사들을 숨겨두고 적군이 보지 못하게 하는 시설물로 아래쪽은 돌로 쌓고 중간부터는 벽돌로 축조하였다.


비상사태를 알린느 역할을 하는 통신시설로 봉돈의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벽돌을 쌓고 그위에 5개의 화두를 두었으며, 긴급 상황에 따라서 화두에 불을 올리는 숫자를 달리했다.


창룡문 편액은 판부사 유언호가 썼다는 성의 동문이다. 화성을 출입하는 4대 관문중에 하나로 동쪽에 있으며, 커다란 대문이 설치되어있다.


동북노대는 창룡문의 북쪽에 있다. 쇠뇌를 쏘던 방어시설로 산 정상부에 위치 하여서 멀리까지 관망할수있으며,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있다.


동북공심돈은 노대의 서쪽으로 바로 옆쪽에 있다. 공심돈은 군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적을 살필수 있게 만든 망루의 일종으로 수원화성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이다.


연무대 옆에 국궁장에서는 전통 국궁 활쏘기를 실시하고 있어 옛 문화를 직접 체험할수있다.


수원화성에는 2개의 장대가 있으며, 서장대와 동장대가 있다. 이곳은 동장대로서 연무대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에서도 두명의 순라가 지키고 있다.


동력차와 관광객 탑승차량 3량으로 구성된 화성관광열차는 앞부분의 경우 정조대왕을 상징하고 힘찬 구동력을 상징하기 위해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동암문은 동장대 서쪽에 있다. 동쪽에 자리잡고 북쪽을 향하여 있으며 벽돌로 안과 밖의 홍예를 만들어 말 한필이 지나갈 수 있다.


동북포루는 각건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에있다. 지세가 별안간 높아져서 용머리를 눌러 굽어보고 있다.


북암문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만들어 적에게 들키지 않게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공급할수 있도록 만든 군사시설이며, 화성에는 서남암문,북암문,동암문,서암문등이 설치되어있다.


동북각루는 방화수류정이라고도하며 벽성의 서북 용연의 위에 있다. 용두란 것은 용연의 위에 불쑥 솟은 바위를 말한다. 


동북각루를 지나서 한번쯤 뒤돌아 보면 산등성이를 타고 지형생긴대로 길게 연결된  성곽의 풍경이 장엄하게 느껴진다.


북수문은 편액에 화홍문이라 써있으며 방화수류정의 서쪽에 있으며 성을 답사하면서 유일하게 하천을 통과하는 성을 만날수 있다.

▲ 수원에서 서울로 가는 관문역할을 하는 장안문은 한양에서 출발한 임금을 맞이하는 정문이다.
 
수원화성은 조선의 절정기에 탄생했다. 그 시작은 비운에 죽은 사도세자의 묘원을 옮기는 것으로 비롯되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세계인이 즐겨 찾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문화는 발전과 절정기 그리고 쇠퇴기라는 곡선을 그리면서 역사는 흐른다. 수원화성의 건설 이후로 보이는 조선의 정치적 문화적 쇠퇴는 수원화성을 극점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수원화성은 조선의 꽃이요, 우리민족의 만들어낸 성곽의 꽃이다. 그러나 꽃이 아무리 아름답고 향기가 그윽해도 제대로 가꾸고 보살피지 않으면 시들거나 죽어버린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은 그래서 자명해진다. 이 아름다운 수원화성을 어떻게 가꾸고 지킬 것인가. 수원화성에 서려 있는 소중한 정신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교훈으로 만들 것인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민족에게는 어느 민족도 모방할수없는 독특하고 개성있는 문화유산을 많이 창출했었다. 수원화성을 건설한 사람들도 훌륭했지만 그것을 잘 지키고 가꾼 오늘날의 사람들도 분명히 훌륭하다. 이제 우리가 할일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잘가꾸고 보전하여, 길이 후손에 고스란히 물려줘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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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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