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은 정조가 현륭원(사도세자의 묘가 있는곳)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가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정조 18~20년에는 수원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했는데 평상시에는 유수부 관청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수원화성은 동서남북에 4개의 문루로 이어져 있으며, 뛰어난 건축술로 인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 되었다.
화성행궁에는 정조가 승하한 뒤 순조 1년에는 행궁 곁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하였는데, 그뒤 순조·헌종·고종 등 역대 왕들이 화성행궁을 찾아 이곳에 머물렀다한다. 따라서 이 행궁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수많은 행궁 중 단연 으뜸의 건축물이 될수밖에 없었다. 화성 행궁은 성곽과 더불어 단순한 건축조형물이 아니라, 정조가 지향하던 왕권강화정책의 상징물로서 정치적·군사적인 큰 의미를 지닌다.
화성행궁은 화성축조가 완공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576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로 완성되었으나,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사라진것을 1996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화성행궁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눈에 띄이는것은 홍살문 뒤쪽에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가 보인다. 신풍루는 정조 14년에 세워졌는데 처음 이름은 진남루였다.
좌익문은 신풍루를 통과하여 마당을 지나면 수직선상에 나오는 문으로 중양문 앞에 위치해 있다. 남쪽 끝은 외정리소와 연결되어 있다.
신풍루를 통과하여 우측으로 보면 집사청으로 들어가는 대문앞 담장가에 거대한 고목나무가 보이며, 담장아래는 무었을 의미하는지 몰라도 원색의 복주머니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집사청은 국왕이 쓰는 문방사우를 보관하고, 비품을 관리하는 것과 같이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는 건물이다
집사청 후문을 들어서면 ㄱ자 형태의 북군영 건물이 보이는데, 남군영과 마찬가지로 친군위의 기마병이 숙위하는 건물이다.
남군영은 장용영 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가 살면서 지키는 건물이다. 남군영은 신풍루를 마주보는 쪽에서 보면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서리청은 서리들이 사용하는 건물이며, 서리란, 문서의 기록 및 수령, 발급을 담당하는 아전이다. 서리청은 비장청 앞쪽에 위치해 있다
비장청에 머무르는 비장은 관찰사나 절도사등 지방관이 데리고 다니던 막료로 조선 후기에는 방어사를 겸한 수령까지 모두 비장을 거느리는 것을 관례화하여 민정 염탐을 시키기도 하였다.
유여택은 평소에 화성유수가 기거하다가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는 건물이다. 유여택은 복내당 동쪽 행각과 외정리소 사이에 있다
유여택의 좌측 건물에는 뒤주속에 갇혀 죽진 사도세자의 당시 상황을 재연해보는 뒤주 체험장이 마련되어있다. 뒤주속에 갇혀 있으면 어떤 심정일까?
복내당은 행궁의 내당으로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던 곳으로 장락당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 복내당은 인기사극 대장금을 촬영장소로 많이 이용하였다.
장락당은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에, 혜경궁 홍씨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안쪽에는 헤경궁홍씨의 내실이 재현되고 있다.
경룡관은 장락당의 바깥문으로 사용했던 부속건물이며, 2층 구조로 만들고 2층은 누마루로 만들고 1층을 문을 만들어 지락문이라 이름붙였다.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이자 화성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이라고 한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하였다.
중양문은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앞에있다.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 좌협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 좌우로 긴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 하였다.
득중정은 정조가 활을 쏘던 정자로, 정조가 세로 만들어진 이 정자에서 활을 4발 쏴 다 맞춘 기념으로 득중정으로 지었다한다.
낙남현은 각종 행사를 치러졌던곳으로,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의 회식을 이 곳에서 하였으며, 특별과거시험을 치러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 주는 행사도 있었다.
노래당은 정조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수원에서의 노후생활을 꿈꾸며 지었다는 건물이다.
화령전내에 좌측으로 배치된 전사청은 국가의 제사를 지내는 종묘나 분묘 제례때 소홀함이 없이 준비할수 있도록 전사관이 머물던 곳이다.
전사청을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제정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제정은 화령전에서 제례를 준비할때 정화수로 사용하던 어정이라한다.
화령전은 사적 제115호로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정조의 영전을 모신곳이다. 화령전의 운한각은 보통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구별되는 건물로 비록 돌아가신 선왕이지만 선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살아 있을 때와 같이 봉안하는 곳이다.
필자가 조선역사를 접할 수 있던것은 T.V의 사극에서 본, 영조대왕과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대왕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산행정보를 검색하던중에 우연히 화성행궁에 대해서 정보를 알게 되면서, 이 처럼 놀라운 역사물이 연관되어 있는지는 몰랐었다. 그래서 수원으로 가고픈 생각에 날을 잡아 산행은 뒤로 미루고 일정을 이곳으로 정하였던 것인데, 행궁을 답사하고나니 실로 그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다. 직장생활의 주중에 있었던 모든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고 훌쩍 떠나서 역사의 현장에서 선인들의 생활상을 돌아보는것도 쏠쏠하게 재미있었다.
돌이켜보면, 조선 22대 정조는 선왕인 사도 세자가 뒤주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자 그 능을 당시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받던 현륭원으로 이장하였고, 능 주위에 살던 주민 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도시와 성곽을 축성하였다. 화성행궁은 건물의 규모가 방대하여 건축물 양식의 백미를 감상하며 꼼꼼히 돌아보려면 1시간이상 걸린다. 행궁을 천천히 모두 돌아보면서 건물의 운치가 너무좋아 수백장을 사진을 찍었지만, 지면이 한정이라 더 많은 장면을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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