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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읍에 위치한 부소산성은 반달모양으로 휘어 감으며,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이며 사비시대의 도성으로,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 16년(538)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 22년(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무왕 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성 안에는 군창터 및 백제 때 건물터와 영일루·사자루·고란사·낙화암 등이 남아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하다.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는 곳이다.

☞ 부소산성 구문 매표소를 통과하여 좌측방향으로 진행합니다. 그럼 함깨 돌아보실까요.



부소산성 서복사지 - 시도기념물 161호
서복사지는 원래의 사찰명은 알 수 없으나 그 동안의 발굴조사 결과  전형적인 백제 사찰지이다. 사지의 축조공법이 정교하여 백제사원 양식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서 보존가치가 크다.


부소산성 반월루
부소산성의 테뫼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이 만나는 등성이에 1972년 지은 2층누각으로 백마강, 부산의 대제각,규암진 수북정이 아련하게 들어와 부여가 반월성이라 이유를 알 수 있는 곳이다.




반월루 2층 누각에 올라서면 더운날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금새 한기를 느끼며, 부여시내를 한눈에 조망할수 있는 곳이다.


반월루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는 수혈병영지가 보존되고 있으며, 비바람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2동의 건물을 지어서 수혈주거지를 보존하고 있다. 


수혈병영지는 1980년 발굴조사 당시 3개의 움집터가 발견되었으며, 움집터중에는 유일하게 가장 잘 윤곽이 나타나도록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부소산성 사자루 - 문화제 자료99호
부여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누각으로, 사자루는 사방이 트여있는 높은 곳에 있어 부여의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누각이다.


사자루를 지나서 백화정 가는 길가에서 연리지를 만났다. 연리지는 가까이 자라는 두나무가 맞닿은체로 오랜 세월을 지나면 서로 합처져서 한나무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연리지는 두몸이 한몸으로 된다는 뜻으로 남녀간에 애틋한 사랑과 비유하여 사랑나무라고 한다.
연리지의 신기한 모습을 보면서 백화정을 향하는 길은 좌측으로 가파른 길을 내려선다.



백화정 아래 천년송 앞쪽에는 백제의 역사와 삼천궁녀들의 애절함을 적어놓은 문구가 잠시동안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낙화암 정상에는 백화정이 우뚝 솟아 있으며, 백화정 올라가는 계단길 아래쪽에는 천년의 세월을 자라왔다는 천년송은  삼천궁녀들의 애절함을 알고 있는지~~


부소산성 백화정 - 문화재자료  제108호
낙화암 정상의 백화정은 백제 멸망 당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며, 백마강변의 낙화암 정상의 험준한 바위 위에 자리한 육각정이다.


백마강은 백제의 제일 큰 강이란 뜻으로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km의 금강을 일컫는데 백제 사람들은 이 강을  사비강, 백마강이라고 불렸다한다.


백화정에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니 가파른 절벽 아래쪽에 백마강에는 황포돗배가 다니는 풍경이 보이고, 강변의 언덕위에는 고란사의 지붕이 살짝 보이고 있다.


백마강을 가까이 보기위해 가파른 산길을 따라서 고란사를 돌아보고나서, 다시금 오던길을  돌아서 힘겹게 올라서서 부소산성의 중심부의 성곽길을 따라가 보았다.


부소산성 군창지 - 문화재자료  제109호
부소산성내의 동남부 가장 높은 위치에 해당되는 곳에 있는 이 군창지는 1915년 이곳 지하에서 불에 탄 곡식이 발견됨으로써 백제시대 군량을 비축해 두었던 창고터로 알려지게 되었다.


부소산성 영일루 - 문화재자료  제101호 
부여에 있는 부소산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누각으로, 이곳에서 보면 멀리 공주 계룡산의 연천봉이 아득히 바라다 보인다고한다.


부소산성 - 국가사적 제5호

부소산성의 중심부를 통과하여 군창지와 영일루를 돌아보고나서 삼충사로 향하는길도 볼록한 토성의 좌측으로는 가파른 언덕길에 무성한 숲이 우거진 성곽길을 따라서 한참을 내려서면 삼충사가 보인다.


부소산성 삼충사 - 문화재자료  제115호
백제의 충신이었던 성충·흥수·계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1957년 지은 이 사당은 1981년 다시 지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재 때 삼충제를 지내고 있다.


삼충사는 외삼문과 외삼문을 통과하면 맨 안쪽에 사당이 있으며, 안쪽에 3명의 충신들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삼충사에 모셔진 흥수
흥수는 백제 의자왕 20년(660) 나당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탄현을 지키다 대신들의 반대로 지키지 못하고 결국은 멸망하였다한다.



삼충사에 모셔진 성충
성충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충신으로, 좌평으로 있으면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 옥중에서 단식을 하다 죽었다한다.



삼충사에 모셔진 계백
계백은 나당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결사대 5,000여명을 뽑아 지금의 연산인 황산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한다.



삼충사 1957년에 '삼충사봉건기성회'라는 모임에서 처음 지었으며, 그후1981년 11월에 다시 지었다고 기록되어있다.

▲ 삼충사에서 200m정도 내려서면 구문 입구쪽에 정인지 후손인 하동정씨 정려각이 있다.

백제는 잃어버린 왕국으로 불리는 나라이고 700년 가까운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화려한 영광보다는 비장함과 애잔함으로 다가오는 나라이다. 그래서 의자왕, 낙화암, 삼천궁녀, 계백장군, 황산벌, 오천결사 같은 망해버린 나라의 애달픔이 담긴 말들이 먼저 떠오른다.

부여가 마지막으로 멸망하면서 애절한 사연이 담겨있는 부소산성 답사길에 올랐다.
부여
부소산성길을 밟으며 반월루에 올라보면 부여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고도를 제한한 덕분에 부여의 시야는 막힘이 없고 소담스러운 모습이 살아있다. 

울창한 숲속의 부소산성길을 따라서 쉬엄쉬엄 걷다 살짝 비껴서 보면 성곽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방어와 공격에 유리하게 지어진 선인들의 지혜도 돋보였다.
부소산성을 돌아보려면 1~2시간 걸어여하지만 부소산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바로 낙화암이다.

백마강을 굽어보는 낙화암 벼랑위에는 오랜 세월 손때 묻은 백화정이 자리하고 있으며, 세월이 흐르고 삼천궁녀들의 슬픔을 잊은듯이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는 명소로 알려져있다. 삼천궁녀의 애절한 원혼이 서린 백화정에 올라, 천년세월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내려다 볼때 음향시설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백마강" 노래소리가 이날따라 더욱 구슬프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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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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