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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아십니까?" 하면서 보부상 이야기를 꺼낸다면, 요즘 신세대들에게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에 별다른 관심이 없을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중년들은 지나간 세월속에 잊혀져가는 아련한 추억들, 등짐장수와 봇짐장수들은 시골장터와 가가호호를 찾아다니며 먹거리와 필수품을 팔던 그시절을 기억할것이다.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는 충남 예산의 충의사 본전지역에 우연히 마주친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띄인다. 윤봉길의사와 관련된 전시물인가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전혀 관련이 없는듯 했다. 왜 이곳에 보부상유품전시관이 있는지 아리송하게 생각하면서 일단은 전시관을 관람하기로 하였다.

충의사 내에 있는 이곳 전시관은 조선시대 예산지방의 시장운영에 큰 몫을 맡아왔던 예덕상무사는 유품 28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말엽 예산과 덕산지방의 시장에서 상품의 중개와 시장세의 징수 등을 맡으려는 한편 정치에도 관여하는 등 보부상의 조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부상은 한말인 1899년에 상무사에 소속되었다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는 일제의 말살정책과 근대적 교통기관의 발달에 전국적인 조직이 무너지고 말았다. '
예덕상무사'라는 것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조직돼 전해 내려온 예산, 덕산 지방의 보부상을 관리하던 정부관서라고한다. 
 
 

보부상은 시장을 중심으로 행상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교환경제를 매개하던 전문적인 시장 상인이었다.  보부상 이야기가 나오면 우선 떠오르는것이 그 옛날 추억속에 시장분위기가 떠오르곤한다.

보부상 유품전시관에는 국내 유일한 부보상 유품 중요 민속 자료 제30호로 지정된 25점 전시와 디오라마로 그시대의 부보상 장면이 재현되고있다.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전시관 전경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유품전시관 입구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각종 유품들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각종 유품들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가락엿과 판엿을 파는 엿장수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보따리 장수와 등짐장수의 모습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짚신 장수의 모습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노련한 옹기장수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마지막 보부상 이야기와 유품들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지개에 소쿠리를 달은 등짐장수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나무를 이용해 만든 수공예품들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농가에 필수품인 곡물 담는 그릇


예덕상무사 보부상 유품전시관 - 지게와 짚자리

보부상 유품전시관에서 지금은 아련한 추억속에 사라진 유품들과, 보부상 모습을 재현한 것을 보면 신세대들은 역사공부를 하는듯한 생각이 들겠지만, 구세대들은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조직된 것으로 알려진 예산-덕산 보부상 조직은 예산, 덕산, 당진, 면천 등 4개의 장을 중심으로 수 백년간 상품의 중개를 맡아오며 지역경제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예부터 지역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맡았던 보부상 정신은, 한국 고유의 유통문화 원형을 제공하고 있다는 큰 의미를 지니고있다. 또한 보부상은 민족의 애환을 함께하면서 보여준 진취적 기상과 불굴의 의지가 있으며, 한국의 유통문화를 이해하는 한 요소로 남아있기도하다.

하지만 몇몇 보부상의 유품들만 남아 그 시절의 화려했던 명성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충남지역에는 예덕상무사를 통해 역사적 명맥이 이어지고 있어, 세월이 흘러도 보부상 문화의 산교육의 현장이 될 수 있는 유품전시관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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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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