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생가 유적지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쉽게 구분한다면,

기념관과 생가, 그리고 민가마을과 감고당등 4개구역으로 나누어서 포스팅해본다. 

포스팅 하면서 내용이 길면 스크롤 압박으로 구독자들이 불편하기에 전편에 이어서 두번째 포스팅을 한다.

 

 다시 복습을 하자면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26대 고종황제의 비인 명성황후가 탄생(1851년)한 곳으로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1995년부터 명성황후생가 성역화사업을 추진해서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이번에는 전편에 포스팅한 기념관과 생가에 이어서 민가마을과 감고당을 둘러보게 된다. 

 

명성황후생가 유적지의 관람동선은 기념관을 둘러보고나서 명성황후생가를 둘러보았다.

이어서 명성황후생가를 나와서 옆으로 이어지는 민가마을을 만나게된다.

민가마을은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공간을 표현하는 조선후기 일반적인 취락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민가마을은 명성황후생가와 관련이 있을정도의 큰 의미를 가지는건 아니다.

쉽게 생각하면 조선후기에 서민들의 주거생활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외관만 구색을 갖춘셈이다.

민가마을에는 주거생활의 공간을 전시해서 관람토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가마을의 초가집 대청마루에는 대부분 기념품을 팔거나 매점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상상도 못했던 아메리카노 커피를 팔고있는 카페도 있다.

조금 어울리지는 않지만~~ㅋㅋ

 

 

민가마을에 들어서면 최근년에 지어진 반듯반듯한 각목으로 집을 건축한 모양이 조금 어색하다. ㅎㅎ

그리고 민가마을에는 거리마당과 체험마당, 판매마당으로 구분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화사한 한복대여점도 눈에 띄지만 관광객들에게 눈길이 가지 않는듯~~

 

 

체험마당에는 전통놀이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온동네가 시끄럽게 쇠붙이 마찰음을 내던 굴렁쇠도 보이기에 추억을 생각하면서 굴려본다.

그리고 투호놀이는 겪어보지 못했기에 조금 어색하다.

 

 

그리고 텔레비젼의 사극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곤장치기는 조선시대나 있었던 이야기고~

마당에 줄그어 놓고 흙먼지속에 뛰어 놀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사방놀이도 상상해 본다.

 

 

그밖에 흙묻은 손등이 갈라지도록 팽이치기를 즐기던 옛날을 상상해 해보고~~

동네골목길이나 마당에서 긴줄을 넘기면서 단체로 줄넘기 하던 모습을 상상도 해보면서~

체험의 공간에서 잠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제 민가마을을 둘러보고나서 감고당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멀리에 보이는 기와지붕을 바라보고 걷다보면 길가에 연자방아와 마차가 전시되어 있다.

민속마을 어디를 가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민가마을을 벗어나서 평평한 잔디밭 사이로난 길을 걷다보면 커다란 기와집 군란이 보인다.

이곳은 명성황후생가 유적지의 마지막 코스인 감고당이다.

얼핏 멀리서 보아도 사대부 가문의 저택이라는 생각이들게된다.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저택의 전형적인 특징인 행낭채가 담장처럼 둘러져 있다.

행낭채를 따라서 걷다보면 행낭채 중간에 솟을대문 아래에 감고당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그리고 대문에 커다란 두개의 쇠문고리가 인상적이다. 이리 오너라^^

 

 

감고당은 인현왕후가 희빈 장씨의 모함을 받아 폐위된 후 5년여 동안 유배되어 기거하던곳이다.

또한 명성황후가 8살때 여주에서 한양으로 올라간 후 고종 왕비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감고당은 원래 종로구 안국동에 있었는데,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될 위기에 처한 건물을

2006년 해체한 후에 명성황후의 고향으로 원형을 이전 복원하였다. 

 

 

감고당 역시 주택의 구조는 입구에 행낭채와 안쪽에 사랑채, 그리고 중문채와 안채로 구분이 된다.

행랑채는 대문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집안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머슴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으며, 곡식을 저장하는 장소로도 활용하였다.

 

 

감고당의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쪽에 보이는 건축물이 사랑채다.

사랑채의 규모는 감고당에서 규모가 가장 커보이며, 현재 이곳은 체험공간으로 활용중이다.

한복체험 공간으로서 관람객들에게 한복을 대여하는곳이다.

 

 

사랑채는 남자주인과 귀한 손님이 기거하는 공간이다.

행랑채와 중문채 사이에 자리하였고, 대청, 사랑방,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비교적 쓰임새가 많기 때문에 건축물의 규모가 가장 큰것 같았다.

 

 

중문채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중간계층인 청지기 등이 거쳐 하였던 곳이다.

또한, 쌀, 김치, 장작 등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안채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듯이 중문채의 대문을 들어서야 한다.

 

 

안공간인 안채는 몸채, 내당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집안의 주인마님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으로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에 위치하였다.

안채는 안방,대청,건넌방,웃방,다락,부엌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렇게해서 명성황후생가 유적지에서 감고당까지 둘러보면 탐방을 마치게된다.

전국 어떤 유적지를 가더라도 대부분 과거를 재현해서 현실에 재구성된 건축물이라서 동일하지는 않을것이다.

다만 당시의 건축물을 토대로 역사의 흔적을 재조명하는 의미를 가지고 탐방하는것으로 만족해야 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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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아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