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 사자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법흥사로 답사를 떠났다. 법흥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가 중국 종남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 발우 등을 전수받아 사자산(연화봉)에 봉안하고 흥녕선원을 개창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이다.
선종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사자산문은 징효대사에 의하여 크게 번창하였다. 그후 진성여왕 4년(891)에 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져 고려 혜종 원년(943)에 다시 세웠으나, 계속되는 재해로 인하여 현재는 선원지만 남아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흥녕선원지의 길을 가리키는 3개의 안내 석탑과 1개의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석탑은 충북 제천시 장락에 있는 석탑과 무릉리의 삼층석탑, 주천리의 삼층석탑이고, 입구 옆에 있는 돌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은 흥녕사의 수호불이라고 전해진다. 1902년 원각스님이 새로 절을 지으면서 이름을 법흥사로 바꾸었는데, 이후에도 몇차례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면서 천년고찰이라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곳이다.
법흥사의 일주문을 아랫쪽에서 만난뒤 한참 걷다보면, 사찰입구에 두번째 관문인 금강문이 나온다. 2층 누각으로 조성된 이곳은 원음루라고 불리며,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사물인 법고, 운판, 목어가 있다. 예불시간에 이 소리들을 울리는 뜻은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깨달음의 진리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구봉대산이 품고있는 법흥사는 대표적인 불교 성지로, 한때 2천여 명의 수도승이 운집하기도 했던 큰 가람이었다. 그러나 수차례의 화재로 인해 모두 소실되고 현재는 적멸보궁과 심우장 , 요사채, 징효대사보인탑비, 자장율사 토굴이 남아있다. 또한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은 손꼽히는 경승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경내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이는것은 우측에 전각들이다. 이곳에는 불교용품 판매점과 다향원과 휴식공간이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종무소와 요사채 건축물들이 몇동 들어서 있는것을 볼 수 있다.
경내에 들어서서 좌측을 살펴보면 극락전과 범종각이 보이는데, 범종각은 어느 사찰이나 동일한 모양을 갖추고 있는듯 보인다. 극락전은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보살로서 봉안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극락전 우측편에는 흥녕사에서 선문을 크게 중흥시킨 징효대사 보인탑비와 부도탑이 있는데, 절중 스님의 행장과 신라 효공왕이 ‘징효대사’라는 시호와 ‘보인’이라는 탑명을 내린 것 등을 기록하고 있다.
만다라는 티베트 불교인 밀교에서 발달한 우주 진리의 법신세계를 나타낸다. 가는 모래로 색깔을 입혀서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라 할 수 있다. 신성한 단에 부처와 보살을 배치하여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다. ‘깨달음의 경지를 도형화한 것’을 일컫는데, 2003년 티베트 스님들이 법흥사 법회 때 만다라를 조성하였고 한다.
사찰 경내에 들어서서 1단계에 위치한 극락전과 만다라전을 지나면 전각들은 보이지 않고 울창한 송림이 우거진 숲속길이 나온다. 숲길을 따라서 약간의 경사도를 느끼면서 오르는 길은 바닥에 납짝한 돌이 깔려 있는데, 수 많은 관광객들이 밟고 지나다녀서 반들반들 광택이 날 정도였다.
적멸보궁으로 오르는길은 약간 경사도를 더해가면서 우거진 송림을 걷게 되지만,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기에는 부족함을 느끼게된다. 이때 급경사 계단길 바로 아랫쪽에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약수터를 만나게되니 모두들 약수물을 한바가지씩 마시면서 잠시 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약수물을 마시고 조금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서 조성된 계단길을 올라서서 잠시 걷다보면 법흥사의 주법당인 적멸보궁이 나온다. '적멸보궁'이란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란 뜻이라한다. 법흥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한 흥녕사로, 우리나라 5대 보궁 중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징효대사는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진신사리 100과를 얻어다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등에 나누어 봉안하고, 이곳에 적멸보궁형 법당을 세웠다. 때문에 적멸보궁 안에는 부처의 삼존불이 없고 뒤쪽으로 뻥뚫린 창만있다. 이것은 산 전체가 부처의 몸이라고 전하는 법흥사 적멸보궁의 뜻이라 한다.
적멸보궁 뒤쪽에 토굴은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내부는 가로가1m 60cm,높이가 1m 90cm정도로 한 사람이 앉아서 정진할 수 있는 공간인데 정진 중 주변에 가시덤불을 두르고 정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옛 스님들이 수행하던 토굴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어서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있다.
적멸보궁 뒤 자장율사 토굴 옆에는 육각형 모양으로 조성된 부도탑이 위치해 있으며 화강암으로 제작되었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법흥사 적멸보궁 뒤쪽에 놓여 있는 부도탑에, 모신 사리의 주인공은 명확하게 밝혀 지지 않았지만, 유형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적멸보궁과 자장율사의 토굴 그리고 사리탑을 둘러보는 동안에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답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던 반대쪽길로 내려섰더니 산신각이 나온다. 산신은 ‘산의 신’이라고 하여 명산에는 그 산을 지키는 산신님들을 모신다는 뜻이다.
산신각 바로 아랫쪽에는 제2보궁이라고 불리는 약사전이 있다.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화를 소멸하고 의복,음식 등을 만족하게 하는 등의 12대 서원을 세운 보신부처님이라고 한다. 그리고 약사전 옆에 위치한 전각은 중대 요사채로 불리는 법운당이라고 한다.
현재 법흥사의 유적으로는 옛 흥녕선원의 위세를 짐작하게 하는 3개의 석탑과 1개의 수호석불좌상,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 적멸보궁, 사리탑, 징효대사 보인탑, 징효대사 부도, 흥녕선원지가 있고 종이가 없던 시절 인도 영라수 잎에 범어로 기록한 패엽경 등의 소중한 삼보종재등 소중한 문화재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전국적으로 어디를 가나 심산유곡에 많은 사찰과 암자들이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으면서 사찰 나름대로 소중한 문화재와 보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이곳 법흥사는 신라시대 말에서 고려시대 초까지 성행했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이 번창할 때는 2천여 명에 이르는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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