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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자전거길 여행을 하면서 영덕에서 북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서 일주는 계속된다.

영덕에서 울진 까지는 온통 해안도로를 따라 대게의 상징물들이 가득한 도로를 달리게 된다.

울진땅에 진입해서 월송정을 둘러보고, 망양휴게소를 지나서 북쪽으로 계속 달린다.

 

그런데 우연히 마주친 도로변 언덕위에 목재테크길을 따라서 우뚝 솟아 오른 누각이 돋 보인다.

도로변의 입구에 보니까 망양정 옛터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은 망양리 해변가에 위치하고 있던 망양정이 두번째로 옮겨와 있던곳이라 한다.

 

망양정은 고려시대에 최초로 건립된곳은 망양리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새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졌다.

그후 망양정을 보존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이전하여 건립 했으나 관리가 안되어 또 허물어졌다고 한다.

이곳은 옛터를 보존하기 위하여 유허비를 세우고, 새롭게 정자각을 지어서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망양정 옛터를 지나서 다시 북쪽으로 계속 달리다보니 망양해수욕장 표지판이 보인다.

도로변의 해수욕장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도로 건너편을 보니까 망양정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망양정은 망양해수욕장 주변의 도로를 건너서 가파른 산기슭으로 240미터 올라가야 한다.

 

 

망양정 표지판을 따라서 올라가려고 처다보니 가파른 계단길이 보인다.

도로변에서 240미터라고 하는데, 자전거를 두고 갈 수 없는 입장이라서 어깨에 둘러 메고 계단길을 올랐다.

자전거 여행자는 자전거가 가장 소중하니까 잠시라도 방치 할 수 없기에~~

계단길을 한참 오르고나서 잠시 경사가 원만한 길이 나오는가 했더니 두번째 급경사 계단길이 나온다.

 

 

 

힘겹게 계단길을 올랐지만 우선 망양정의 역사부터 알아보려고 안내문부터 읽었다.

원래 망양정은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던것을 조선 철종때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후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1958년에 중건하였으나,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에 완전 해체후 새로 지었다.

 

 

이 정자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넓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산 정상에 날을듯 앉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아쉽게도 두번씩이나 위치를 이동하고 재건립 하였기에 고전적인 멋은 덜하지만 깔끔하게 보존되고 있다. 

또한 망양정은 현위치로도 관동팔경의 명성에 걸맞는 경관은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망양정에 올라서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팔을 내밀면 손끝이 닿을듯이 가까이 보인다.

그리고 옛날에 왕이 피난했다는 계곡이 흐르는 왕피천에서 망양해수욕장으로 흘러드는 물길이 보인다.

망양해수욕장 끝자락에 바다로 길게 이어지는 산기슭 끝자락은 망양정이 최초에 건립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바다를 낀 높은 정자는 눈앞이 탁트여, 올라보면 가슴 속이 씻기네

긴 바람이 황혼달을 불러 올리면, 황금 궁궐이 옥거울 속에 영롱하다."

 

망양정 정자각 안쪽에는 목판 액자들이 많이 걸려 있는데, 아계 이산해의 글을 감상해본다.

 

 

태초의 기운 아득히 바다에 풀어지니, 뇌라서 이곳에 망양정을 알 수 있으리

흡사 문선왕 공자의 집을 흝어보듯, 종묘며 담장 하나하나 훑어본다.

 

이 글은 정조대왕의 어제시로서 태송 박영교가 적었다고 한다.

 

 

십리에 모래 펀펀한데 큰 바다를 바라보니, 해천은 멀고 넓은데 달빛이 창창하네

봉래산이 그야말로 속세와 떨어졌으니, 사람은 명아주 한 잎에 떠 있구나.

 

이 시는 김시습이 지은 시를 단산 김재일이 옮겨 적다.

 

 

뭇 멧부리들이 첩첩이 하늘에 닿아 있네, 놀란 파도 큰 물결 하늘에 닿아 있네

만약 이 바다를 술로 만들 수 있다면, 어찌 한갖 삼백잔만 마시리

 

이 글은 숙종대왕의 어제시로서 태송 박영교가 옮겨 적었다.

 

 

망양정 정자각 안쪽에 걸려있는 목판 액자들은 모두 한문으로 표기한 글들이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정철이 지었다는 관동별곡은 그래도 한글로 새겨져 있어서 조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한글을 보니까 세종대왕이 얼마나 고마운분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그밖에도 망양정 건립의 역사적인 기록내용이 목판 액자에 한문으로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이렇게 많은 글자를 어떻게 읽을까 생각하면서 일단 카메라에 담아본다.

 

 

그래도 이곳은 한글 목판에 새겨진 망양정 약사가 있어서 어렴풋이 역사를 알 수 있었다.

내용이 방대해서 모두 숙지하기는 쉽지 않았기에 일단 카메라 화면에 담아본다.

꼭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판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망양정 역사 공부를 한참동안 하고나서 다시 현시대로 돌아온다.

관동팔경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수난을 겪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된 누각이 어디에 있을까만은~~

유달리 망양정은 수난속에 이전을 거듭해가면서 그래도 명맥을 유지하는것만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해서 동해안 자전거길을 일주하면서 관동팔경중에 북한에 있는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둘러보았다.

결국 관동육경의 모든 경관을 가슴에 품었다는 이야기가 성립되지만 아쉬운것은 총석정과 삼일포~

내 살아 생전에 관동팔경을 모두 가슴속에 품지 못할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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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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