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선정이란 영월군 무릉도원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법흥사 쪽에서 흘러내리는 법흥천 인근 절벽위에 있는 정자다. 邀僊(요선) 이라 쓴 글씨의 뜻은 신선을 맞이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요선정은 대대로 이 지방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힘을 모아 숙종, 영조, 정조 세 임금이 써준 어제시를 봉안하기 위하여 1913년에 세운 정자이다.
영월 땅에 세분 군왕의 어제어필시문이 내려진 것은 숙종 말년인 1720년에, 조선 초기의 왕조애사를 바로 잡기위해 영월에 유배된 후 승하한 단종을 종묘에 모시는 한편 노산 묘를 장능으로 추봉하였다. 그리고 영월 유배길을 살피다가 1698년(숙종24) 정월에 "빙허, 청허양루시" 한수를 써서 당시 강원감사 심정보에게 내리니 어제어필 시문이 주천현루인 청허루에 간직되었다. 그러나 청허루에 화재로 어제시는 누대와 함께 소실되고 말았다.
그후 청허루를 중건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영조대왕께서는 선왕의 시문을 보존하기 위해 숙종대왕의 어제시를 손수 쓰고, 그 뒤에 다시 시 한편을 더 보태어 당시의 강원감사인 임집에게 내리니 새로 중건된 청허루에는 두 임금의 어제시를 봉안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속에 청허루가 퇴락하여 마침내 무너졌고, 세 임금의 보묵은 민가에서 보존되니 이를 봉안하고자 무릉리에 요선정을 짓고 어제어필시문을 봉안하게 되었다한다.
요선정은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소재지에 있으며, 법흥사 방면으로 가다보면 호야지리박물관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정표가 있으며, 입구에는 "마애여래좌상봉안도량" 미륵암 표지판을 따라 좁은 산모퉁이로 들어가게 된다. 잠시후 요선암 돌개구멍 안내판이 설치된 자그마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나서 약100여미터 걸어야한다.
주차장에서 잠시 숲길을 걷다보면 미륵암이라는 자그마한 암자를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이곳까지 자동차들이 진입했지만, 요즘은 문화재 관리지역이라하여 자동차 진입이 통제되고 있다. 요선정은 이곳 미륵사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산길을 따라서 잠시 경사진 산길을 조금 올라가야한다.
요선정으로 오르는길은 약간 경사진 길을 잠시 올라서면, 울창한 솔밭길 사이로 호젖한 오솔길을 걷게된다. 잠시 오솔길을 걷고 있노라면 시원한 솔바람이 불어주니 더욱 시원하게 느껴지는곳이다. 잠시후 경사로를 따라서 테크길을 걷다보면 가장 높은 정상의 위치에 자그마한 정자각이 시야에 들어온다.
요선정은 불교 전성기인 통일 신라시대 철감국사 도윤과 징효대사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자산 기슭에 흥령선원을 개원하고 자주 이 곳에 와서 포교를 하던 곳으로 그 당시 작은 암자가 있던 곳이라 한다. 또한 징효대사가 이 곳에서 열반했을 때에는 1천여개의 사리가 나왔다는 불교와 인연이 깊 은 곳으로 정자 주변에 마애여래좌상과 석탑 1기가 남아있다.
요선정 옆 바위 한 면에 음각으로 새겨 놓은 마애불좌상은 1982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이 곳에 있는 마애불은 그 중의 하나로 얼굴은 양각으로 되어 있으나 그 밖의 부분은 선각으로 음각한 좌상이다. 전체적으로 상하의 균형을 잃고 있으나 힘찬 기상이 잘 표현되어 있는 마애불상으로 옆에 있는 청석탑과 함께 고려 시대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요선정에는 두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邀僊(요선) 이란 쓴 글씨의 뜻은 신선을 맞이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또하나의 慕聖(모성)이란 임금을 그리워 한다는 뜻을 가진 두개의 현판이 나란히 걸려있다. 요선정 안쪽에 봉안되어 있는 어제시는 두 틀 板額(판액)에 보존되어 있으며, 그 중 하나에는 숙종대왕어제시와 영조대왕어제어필시를 담았고, 다른 한쪽에는 정조대왕의 친필서 문과 어제시를 담고 있다.
숙종대왕의 어제시 현판이 화재를 입고나서, 무인년 고을을 지키던 신하로부터 중건하였음을 영조대왕이 듣게되자 영조는 숙종대왕의 어제시 원편을 찾아 손수 글을 쓰고 서문을 지어서 근신에게 명하여 달게하였다.
<한 누각이 이루어지고 훼손되는데 따라 무겁고 가벼움이 있는게 아니라. 좋은 글과 글씨가 황홀하기만 하니 이 누는 이것으로 빛나고 그 고을의 산천 또한 이 누로 인해 빛나니 이누각이 이 고을의 자랑이 아니겠는가. 기와를 잇고 수리하는 일은 가히 힘쓸줄 믿으니 공경해서 시를 짓고 대략을 적어 그 곁에 달게 하노라> 하는 내용의 서문과 함께 정조대왕도 어제시 한편을 내려주었다고한다.
또 하나의 판액에는 정조대왕께서는 청허루에 봉안된 두 분 선왕의 어제시를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경취주천현루소봉" 서를 지어 두분 선왕의 어제시옆 에 걸게 하니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주천은 옛 고을로 지금은 원주에 속해 있으며 청허와 빙허의 두 누각이 있는 경치좋은 곳 옛날 심정보목사가 있던 고을이다.
그밖에도 요선정 안쪽에는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역사적인 자료가 되는 낡은 현판들이 빼곡하게 걸려있으나, 역사학자가 아닌 이상 모든 내용을 판독하기는 쉬운일이 아니지만 참고자료로 사진에 담아보았다.
그리고 요선정 좌측에 무릉리 마애불좌상의 뒤쪽에는 수 십 미터의 절벽위에는 모진 세월 견디어 온 소나무가 분재송 처럼 두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절벽 아래쪽으로는 법흥계곡에서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길이 보인다. 물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요선정을 둘러보기 위해서 오르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은 덤으로 얻어가는 셈이다.
요선정 우측으로 거대한 바위에는 "석명선" "정사이월태수행"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최초에 이곳에 새워져 있던 징효대사의 암자와 관련된 흔적으로 보인다. 이곳을 둘러 보면서 문화제 41호인 요선정과, 유형문화제 74호 마애좌불상은 시대가 다르고 역사적인 의미도 각각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통일신라 시대의 암자와 징효대사의 기록이 있는 그자리에, 고려시대에 마애좌불상이 새겨지고 작은 석탑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체, 그 공간을 이용하여 조선시대에 요선정을 건립하여 문화재가 잘 보존되고 있는것은 역사적인 자료를 보존하기 위한 선인들의 노력이 공존했기 때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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