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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관광지는 순천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으로 가본다.낙안읍성은 넓은 평야지에 축조된 성곽으로 성내에는 관아와 100여 채의 초가가 돌담과 싸리문에 가려 소담스레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옛 고을의 기능과 전통적인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는 서민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에도 보고 느낄 수 있는 전통문화로제로서 현재 85세대가 거주하는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다.

대부분이 성곽은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낙안읍성은 들판 가운데 축조된 야성으로 외탁과 내탁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이곳은 낙안 평야지에 있는 읍성으로서 연대를 살펴보면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 의하면 세종6년(1423)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 내용에 "낙안읍성이 토성으로 되어 있어서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면 읍민을 구제하고 군을 지키기 어려우니 석성으로 증축하도록 상소를 하였더니, 왕이 승낙하여 세종9년(1426) 에 석성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성곽 동쪽에 위치한 성문로서 낙풍루라 부른다.
낙풍루 앞쪽에 매표소가 있고 관광객들은 이곳을 통하여 관람을 시작하게된다. 

 동문밖 평석교 앞에 좌우에 2마리의 석구가 지키고있다.
석구상은 원래 세 마리 였다고 전하는데 현재는 두 마리밖에 없다.
옛부터 개는 집을 지키고 잡귀 잡신의 물리치는 영물로 여겨 왔기에 이곳을 잘 지키라는 뜻이겠죠?

동문의 좌측을 보니까 높은 성곽이 가지런히 잘쌓여져 있는 모습을 볼수있었다.
조상들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곽으로 돌 하나 하나에 피와 땀과 눈물이 얼룩져 있으며,
우리의 역사와 강토를 지키고자 무던히도 애썼던 호국 의지의 본보기가 아닌가 하는 깊은 생각을 해본다. 

 낙풍루의 좌측으로 만들어진 계단길을 따라 성곽에 올랐다.
성곽길은 비교적 널찍하여 마음편하게 걸으면서 마을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성곽길을 따라서 남문쪽으로 걸으면서 바라보는 마을은 너무나 정겨운 풍경이다.
마을길의 동네 어귀에 금방 고향의 어르신을 만날것 같은 고향의 향기가 가득 풍겨오고 있었다. 

 

 성곽길에서 멀리 마을 전체가 보이며 오돈도손 모여있는 초가집이 이체롭다.
늦가을 이엉을 엮어서 지붕을 해 잇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수 있었고
마을 전체의 배경은 한폭의 그림같이 보인다.

성곽의 높이가 4~5m 되니까 그위에서는 마을 전체가 한눈에 조망되고,
산책을 하면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안쪽에 옛모습을 재현한 물방아간이 정겨워 보인다.
 

성곽의 남문으로 쌍청루 또는 진남루라고도 하며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관리가 소홀하여  퇴락하였다가 1987년 낙풍루와 함께 다시 복원되었다 한다.  

 남문을 지나서 서문으로 가는 성곽길에서 성 안쪽에는 대나무 숲이 가득 우거져있다. 

 서쪽에 위치한 문으로 낙추문이라고 하며,
빈계재를 넘어 화순, 광주, 나주 등지로 갈때는 이문을 지나갔다고 한다.
낙추문 의미는 가을을 상징하고 풍요로운 수확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퇴락 하여 없어져서 옹성만 복원되어있다.

마을 안쪽을 구경하기 위하여 서문에서 성곽길을 내려왔더니, 
서문 입구의 안쪽으로는 각종 장승들이  옛모습을 전해주어 정감을 더해준다. 

 사나운 황소의 목에 멍에를 걸어놓고,
황소의 고삐를 끌면서 연자방아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사람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이곳은 드라마 셋트장으로 최근에 촬영한 포스터가 벽면에 걸려있고,
이곳에서 싸리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며 사진한컷 찍어보는 여유를 가져본다.

낙민루는 조선 헌종때 군수 민중헌이 중건하였으며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명루로서 오랜 세월 낙안 군민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눈 누각 이었으나 
6.25때 불타고 재건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동헌으로 조선왕조때 지방관청으로 감사, 병사, 수사, 수령등이
지방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중앙 마루는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 사용하였다 한다.  

 지방 관아의 안채로서 내동헌 이라고도 하며 지방 수령이 기거하던 곳으로
정면은 ㄱ 자형으로 7간, 측면 2간, 54.69평 팔작 지붕과 안쪽에 고방이 있으며
부엌과 창고가 함께 설치되어 있다.

 "후∼욱 후∼욱" 쉴새없이 밀고 당겨지는 풀무질 "타당탕 타당탕, 탕 탕 탕 .."
불에 달구어진 쇠를 모루에 놓고 대장장이가 망치로 두들긴 다음 물에 담금질하는 소리 "치익~"  
호미, 낫, 괭이, 쇠스랑 등 각종 농기구나 문고리, 칼등 각종 생활도구를 만들던 대장간의 모습이 보인다. 

 시골집에서 가져나온 각종 농산물들을 팔고있는 정겨운 시골 장터이다.
싸게 사려고 깍는사람, 한푼이라도 더받으려는 아낙네들의 흥정이 오가며 왁자지껄 오손도손 장을 펼친다. 

 이곳은 옛날로 말하면 주막집같은 형태로 간단한 식사류를 팔고있는 향토음식점이다.
이곳에서 도토리묵 한접시 시켜놓고 동동주 한잔 마시며 잠시 쉬어 가는 여유를 가질수 있다.

임경업 장군이 낙안 군수로 봉직하면서 선정을 베푼 것을 기리기 위하여 군민이 세운 비각으로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모든 군민이 제향을 모셔 왔다고 한다.낙안 읍성은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것들 중 하나라고하며,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성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초가집은 초라한 느낌은 들지만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하고 정감이 넘처보였다.
나즈막한 돌담과 고샅을 구획삼아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남부지방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토방, 지붕,섬돌위의 장독과,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돌담은 모나지도 높지도 않고 담장이와 호박넝쿨이 어우러져 술래잡기 하며 뛰놀던 어린시절 마음의 고향을 연상케 하며 마당 한곁의 절구통 마저도 정겨운 고향의 풍경을 느낄수 있었다.

무수한 새월을 지나면서 역사적인 사건사고를 굳굳하게 견디어 내고 아직도 옛모습이 잘 보존된 낙안읍성가을여행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널찍한 성곽길을 따라 산책하면서 오손도손 초가집이 모여있는 마을을 바라보는 풍경은한폭의 수채화를 보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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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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