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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는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땅 "내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1821년 8월 21일 한국 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탄생하였으며 박해를 피해 할아버지 김택현을 따라 용인 한덕동으로 이사갈 때인 일곱살까지 살던곳이다.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는 증조부 김진후, 종조부 김한현, 부친 김제준, 그리고 김대건 신부에 이르기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용인 한덕동에서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가 1845년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돼 그 해 10월 귀국한다.
귀국 후 용인 일대에서 사목을 하다가 1846년 9월 국문 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했다. 그리고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때 성인 품위에 오르게 되었다. 솔뫼 성지의 소나무 그늘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하여 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생가와 기념관, 피정의집이 있다.
김대건 신부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후, 1846년 국사범으로 체포되어 3개월 동안 포청에서 문초를 받으며 보여준 신진사상 전파는 이 나라가 봉건사회에서 근대 민주국가사회로 넘어가야 한다는 안목을 느끼게 한다. 당시 조선은 김대건 신부의 신진사상을 수용할 만큼 세상이 열려 있거나 성숙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분을 희생시켰다.
세월이지나 세상이 열리면서 김대건 신부는 특정 종교 성직자로서만이 아니라 그분이 지녔던 성품에서 변화되어서는 안 될 것과 변화되어야 할 것에 대한 분별과 투신은 현대인들에게 큰 교훈이 된다. 또한 솔뫼성지는 순교하신 그분과 내포에서 하느님을 믿다가 순교한 선인들의 신앙과 성덕을 후손들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우선 솔뫼성지에 들어서면 생가의 뒤쪽에 김대건 신부상이 있는 솔밭이 인상적이다. 제법 넓은 공간에 노송이 우거진 솔밭길을 걸으며, 선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며 명상에 젖어 보기도 한다. 또한 기념관 입구의 안내 데스크에서 연주하는 오카리나의 구슬픈 음악소리가 더욱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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