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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도립공원은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등 3개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현재는 관광지로 개발되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산성의 역사를 되새기고, 문화재 답사와, 자연을 벗삼아 산행을 즐기는 의미를 가지고 주말이면 도립공원 일대가 혼잡하기만하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거대한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일명 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년(1624)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 역사도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 백제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남한산성은 각종 시설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된 곳으로 손꼽힌다.
남한산성은 규모가 방대하여 전체 일주를 하려면 4~5시간이상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산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가볍게 산책을 즐기고 성안에 남아있는 문화재들을 돌아보면, 1시간 정도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일주를 하려면 동문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주를 시작한다.
▲ 성남에서 성으로 진입하는 산성터널
산성터널을 통과하면 남한산성 성안으로 진입하게된다. 성안에 몇군데 문화제를 돌아보고나서, 동문에서 시작해서 시계반대 방향으로 답사를 시작했다.
▲ 개원사 - 경기도시도기념물 제 119호 이 절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승군 본영을 두었던 절로서 벽암 각성선사가 조선 8도의 도총섭이 되어 승려들을 지휘하여 남한산성을 축성하였다.
▲ 현절사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4호 이건물은 병자호란 후 심양에 끌려가 충절을 지키다가 그곳에서 비운을 맞은 삼학사인 오달제, 윤집, 홍익한의 영혼을 모신 사당이다.
▲ 망월사 - 경기도시도기념물 제 111호
장경사 뒤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9개 사찰중 가장 오래된 고찰로 망월암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 지수당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4호
고관들이 한유하던 낚시터로서 건립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의 연못만이 남아 있다.
▲ 남한산성 동문 (좌익문)
▲ 장경사 - 경기도문화재 자료 제 15호
성내에 존재했던 9개의 사찰 중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현존한는 유일한 사찰이며, 이 사찰은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수축시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위해 건립한 군막 사찰이다.
▲ 장경사 신지옹성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이중으로 쌓은 성벽을 말한다. 성벽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 남한산성 북문 (전승문)
▲ 국청사지
서문에서 남동쪽으로 228m지점의 해발 44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절이 있는 곳은 사지에서 북쪽으로 140m 지점인데 이절은 한국전쟁 이후 새로 지은 절이다.
▲ 남한산성 서문 (우익문)
▲ 병암
수어장대에서 서문방향으로 약200m 길 우측에 두 개의 돌로 되어 있다.이 비문에는 정조3년(1779) '남성신수기비문'이 새겨져 있어 유명하다.
▲ 수어장대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호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부에 세워져 있으며, 이 건물은 남한산성의 지휘 및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어진 누각이다.
▲ 남한산성 남문 (지화문)
▲ 남한산성 행궁 - 국가사적480호
도성 안의 궁궐이 아니라 한양에서 임금이 거동할 때 남한산성에 머물때 이용하는 별궁을 말한다.
▲ 침쾌정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5호
군기 제작소로 알려졌고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시진이 중수하고 '침과정' 이라는 편액을 걸어다. 창을 베개삼는다'는 뜻이다.
현재 성안에 남아 있는 건물은 동.남문과 서장대, 현절사, 연무관, 장경사, 지수당, 영월정, 침괘정, 숭렬전 이서 장군사당, 보, 루, 돈대 등이 남아있다. 그 중 4대문과 수어장대, 서문 중간쯤의 일부 성곽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한산성은 사적 제 57호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탐방로 전체를 답사 할 수 있는 5코스를 선택하면, 전체거리가 거리 약 8km 정도 된다. 관리사무소 - 동문(0.6km) - 동장대터(1.1km) - 북문(1.6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동문(1.7km)로 소요시간 200분 이상의 시간을 예상해야한다.
남한산성 탐방로를 답사하다보면, 웅장한 산세와 아름다운 계곡 그리고 자연 소나무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자연환경에 도취하게 된다. 또한 남한산성 내에는 200여개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자연생태환경과 더불어 산성 내 구석구석이 역사와 설화가 살아있는 탐방로를 구성하고 있었다.
또한 민족자존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보물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에 남한산성을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추진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 및 연구조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하니, 수도권의 매력적인 명소이자 세계속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할 남한산성의 내일을 기대해본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거대한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일명 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년(1624)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 역사도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 백제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남한산성은 각종 시설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된 곳으로 손꼽힌다.
남한산성은 규모가 방대하여 전체 일주를 하려면 4~5시간이상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산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가볍게 산책을 즐기고 성안에 남아있는 문화재들을 돌아보면, 1시간 정도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일주를 하려면 동문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주를 시작한다.
▲ 성남에서 성으로 진입하는 산성터널
산성터널을 통과하면 남한산성 성안으로 진입하게된다. 성안에 몇군데 문화제를 돌아보고나서, 동문에서 시작해서 시계반대 방향으로 답사를 시작했다.
▲ 개원사 - 경기도시도기념물 제 119호 이 절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승군 본영을 두었던 절로서 벽암 각성선사가 조선 8도의 도총섭이 되어 승려들을 지휘하여 남한산성을 축성하였다.
▲ 현절사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4호 이건물은 병자호란 후 심양에 끌려가 충절을 지키다가 그곳에서 비운을 맞은 삼학사인 오달제, 윤집, 홍익한의 영혼을 모신 사당이다.
▲ 망월사 - 경기도시도기념물 제 111호
장경사 뒤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9개 사찰중 가장 오래된 고찰로 망월암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 지수당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4호
고관들이 한유하던 낚시터로서 건립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의 연못만이 남아 있다.
▲ 남한산성 동문 (좌익문)
▲ 장경사 - 경기도문화재 자료 제 15호
성내에 존재했던 9개의 사찰 중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현존한는 유일한 사찰이며, 이 사찰은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수축시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위해 건립한 군막 사찰이다.
▲ 장경사 신지옹성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이중으로 쌓은 성벽을 말한다. 성벽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 남한산성 북문 (전승문)
▲ 국청사지
서문에서 남동쪽으로 228m지점의 해발 44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절이 있는 곳은 사지에서 북쪽으로 140m 지점인데 이절은 한국전쟁 이후 새로 지은 절이다.
▲ 남한산성 서문 (우익문)
▲ 병암
수어장대에서 서문방향으로 약200m 길 우측에 두 개의 돌로 되어 있다.이 비문에는 정조3년(1779) '남성신수기비문'이 새겨져 있어 유명하다.
▲ 수어장대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호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부에 세워져 있으며, 이 건물은 남한산성의 지휘 및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어진 누각이다.
▲ 남한산성 남문 (지화문)
▲ 남한산성 행궁 - 국가사적480호
도성 안의 궁궐이 아니라 한양에서 임금이 거동할 때 남한산성에 머물때 이용하는 별궁을 말한다.
▲ 침쾌정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5호
군기 제작소로 알려졌고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시진이 중수하고 '침과정' 이라는 편액을 걸어다. 창을 베개삼는다'는 뜻이다.
현재 성안에 남아 있는 건물은 동.남문과 서장대, 현절사, 연무관, 장경사, 지수당, 영월정, 침괘정, 숭렬전 이서 장군사당, 보, 루, 돈대 등이 남아있다. 그 중 4대문과 수어장대, 서문 중간쯤의 일부 성곽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한산성은 사적 제 57호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탐방로 전체를 답사 할 수 있는 5코스를 선택하면, 전체거리가 거리 약 8km 정도 된다. 관리사무소 - 동문(0.6km) - 동장대터(1.1km) - 북문(1.6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동문(1.7km)로 소요시간 200분 이상의 시간을 예상해야한다.
남한산성 탐방로를 답사하다보면, 웅장한 산세와 아름다운 계곡 그리고 자연 소나무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자연환경에 도취하게 된다. 또한 남한산성 내에는 200여개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자연생태환경과 더불어 산성 내 구석구석이 역사와 설화가 살아있는 탐방로를 구성하고 있었다.
또한 민족자존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보물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에 남한산성을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추진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 및 연구조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하니, 수도권의 매력적인 명소이자 세계속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할 남한산성의 내일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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