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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지역에서는 유난히 많은 미륵불을 만날 수 있다. 안성시 삼죽면 국사봉 아래 쌍미륵사에는 기솔리 석불입상이 있다. 과연 어떤 모습을한 미륵인가 궁금해지면서 국사봉으로 향하였다. 좁은 지방도를 따라서 4km정도 이동하면서 좁은 마을길을 따라서 들어가니 쌍미륵사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쌍미륵사에 들어서면 절 입구에서부터 눈에 먼저 띄는 것은 머리에 갓을 쓴 두 미륵불이있다. 부처님 정수리에 솟은 상투모양의 혹에 넓고 둥근 자연석을 다듬어 보석으로 꾸민 관으로 씌워 놓은 것이다. 기솔리 석불입상은 두분의 쌍미륵이 나란히 있다하여 쌍미륵불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남자 미륵불이라 불리는 키 5.4m의 미륵과 여자 미륵불이라 불리는 5.0m높이의 미륵, 이렇게 두분이 함께 서 있다. 기솔리 석불입상이 서 있는곳은 안성 보개면과 삼죽면에 걸쳐 있는 국사봉 산 중턱이다. 미륵불을 정면으로 보고 섰을 때, 왼쪽에 있는 남미륵불이 좀 더 크고 몸이 좋다.
커다랗고 갸름한 얼굴이 주는 편안함은 우리 가까이에서 쉽게 만나는 사람들 얼굴에서 느꼈던 낯익음일 것이다. 송편처럼 둥그런 눈썹이며 길쪽한 코, 두툼하게 복스럽게 생긴 입술이 그렇다. 목까지 늘어진 귓볼이 후덕함을 더해주며, 등에 거뭇거뭇한 이끼들이 미륵이 세워진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얼굴 생김새에 비하면 미륵불의 손과 옷의 주름 등은 세밀하게 조각하지 않았으며, 법의는 부드러운 주름을 여러번 지으면서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만들어져 있다. 미륵불의 손 위치나 모양이 자연스럽게 보이지는 않으며, 미륵불을 만든 사람이 조각 전문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왼편에 있는 미륵불은 목도 굵직하고, 어깨도 각이 진 모습이며, 이에 비해 오른편에 있는 미륵불은 옷 주름도 훨씬 둥글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목도 어깨 넓이에 비해 가는 편이다. 두 미륵불이 있는 자리에 서면, 기솔리 마을의 전경이 그대로 한자락에 펼쳐지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두 미륵불은 편평한 위치에 나란히 서있는듯 보이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진촬영을 해보면 쉽지않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마치 우측에 있는 미륵불이 비스듬하게 넘어지는듯이 보인다.
또한 미륵불이 자리한곳은 비탈진 지형을 깍아내고, 계단식으로 만든 다음 중간쯤에 새워져 있다.
쌍미륵불 앞쪽에는 청동으로 만든 부처가 있는데, 많은 팔을 지니고 있는 의미는 알 수 없었다.
# 쌍미륵사 용화전
# 쌍미륵사 천불전
# 쌍미륵사 산신각
# 쌍미륵사 요사채
쌍미륵불은 고려시대의 석불입상으로 추정되며, 현재 "기솔리 석불입상" 이란 명칭으로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기솔리 석불입상은 귀중한 가치를 인정받은 보물은 아니지만,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충분히 있기에, 최근년에 건립된 쌍미륵사가 지켜주고 있었다.
국사봉 중턱에 자리한 쌍미륵사는 어쩌다 한번씩 답사오는 길손을 쌍미륵불이 말없이 내려다보고 맞이하고 있다. 조용한 산사는 정말 절간처럼 적막하기만 하지만 쌍미륵불은 그래도 지켜주는 절집이 있어서 외롭지 않을듯하다. 누군가 글쓴이에게 질문을 한다."절에 다니십니까?"
"문화재 답사를 하기위해 절에는 다니는데, 불교를 안믿는다." 고 대답한다.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면서 문화재를 찾아서 답사하고 몇시간씩 시간을 투자하여 블로그에 포스팅하지만 사실 읽어 주는 사람도 없다. 이렇게 문화재답사의 길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털보의 문화재답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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