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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시내 산성동에 있는 공산성은 백제 문주왕 1년(475)에 한산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다가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천도할때까지 5대 64년간의 백제의 수도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성이다. 사적 제12호인 공산성은 총 연장 2,660m의 고대 성곽으로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의 요지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1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암문·치성·고대·장대·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했던 곳이기도 하다.
공산성은 총 둘레가 2,660m로, 웅진성의 문화유적들을 한바퀴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공산성은 해발 110m로 강건너 북쪽에서 보면 마치 한자의 귀인공자(公)자와 같다하여 공산이라 이름하였으며, 현재 복원된 공산성은 총둘레가 2660m의 포곡형 산성이다. 현재 백제의 수도를 수비해온 웅진성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으며, 비단결 같이 흐르는 금강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한다.
오늘날 공산성은 역사와 문화가 함께 정이 깃든 수려한 자연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있게 보여지고 있다. 가족 단위, 부부, 연인들이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산책할 성곽길이 있고 우거진 숲과 숲사이의 산책로가 어우려져 있다. 또한 계룡산과 차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오고 비단결 같은 금강이 발 아래에서 찰랑거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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