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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도립공원 가야산으로 등산을 떠났다. 가야산은 몇번을 가보았기에 등산로가 뇌리속에 선하게 그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계절마다 느껴지는 새로운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 나홀로 가을산행을 가게되었다. 늘 이곳에 가면 등산로 입구에서 남연군 묘가 있어서, 조선왕조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리는 곳이기에 누구나 조선시대 역사를 생각해보게된다.

 

전해지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의 묘는, 본래 가야산 일대에서 제일 큰 절인 가야사가 있던 곳이라한다. 풍수 지리설에 의하면 좌청룡, 우백호가 웅장하게 뻗어 있어 "이대 천자지지" 즉 2대에 걸쳐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부친인 남연군 묘를 경기도 연천에서 이곳으로 옮겨서 이장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대원군은 왕권에 야심을 품고 안동 김씨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생활을 하던 터라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99개의 암자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큰 절이었던 가야사를 불사르게 하고 이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1869년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있었고, 전주 이씨가 멸망한 후 묘소는 황폐화되었으나, 왕실 묘라 하여 후세 사람들이 잘 보존했다고 한다.

 

덕산도립공원 상가리 주차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안내판이 남연군 묘와 보덕사다. 남연군 묘와 보덕사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곳으로 가야사지를 남연군 묘가 차지한 이후에 왕실에서 보덕사를 대신 지어 주었다고 한다.

 

주차장에 보이는 덕산도립공원 안내소를 지나서~

 

최근년에 지어진 새로운 암자인 가야사를 지나서~

 

상가리 마을회관을 우측으로 보면서~

 

백제의 미소길 종합안내도를 지나서~

 

마을길로 올라가면 가야산 입구의 삼거리 등산로 입구에 오른쪽은 옥양봉,석문봉 왼쪽은 가야봉,향로봉이라 되어있다. 좌측길로 조금올라가면 거대한 봉분같은 높은곳에 남연군 묘가 있다.

 

상여는 남연군의 묘를 옮긴후, 광천리 마을에 주었다고 전하는 상여와 동일한 재현품을 보관하고 있는 보호각이다. 여기에 보관하고 있는 남은들 상여는 관광객들의 이해를 돕고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전홍수(한국고전건축 박물관장)씨가 정밀 실측 조사후 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이 바로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묘소의 모습이다. 이곳에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고 원래 묘자리에는 가야사 금탑이 있었는데, 묘를 옮긴지 7년 후 차남 명복을 낳았는데, 철종의 후사가 없어 가까운 종손인 명복이 12세 나이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고종이다.

 

오랜만에 남연군 묘를 돌아보러 왔다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온통 어수선하게 공사를 벌이고 있는것 같아서 무슨일인가 하고 궁금해서 들여다 보았다.

 

원래 가야사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바로 이곳은 역사의 재조명을 하기위해 가야사지 발굴작업을 하고 있었다.

 

옛날 왕실의 장례문화는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풍수지리설을 믿고 명당자리를 찾기 위하여 경기도 연천에서 이곳 예산까지 500리길을 상여로 이동하느라고 얼마나 백성들이 고생을 했을까. 이렇게 조선왕조는 왕권을 계승하기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2대에 걸쳐서 왕권을 계승했지만, 결국은 기울어져가는 조선왕조는 풍수지리만으로 역사를 되돌릴수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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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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