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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소쇄원은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 양산보가 지은 조선시대 별서정원이다.  담양 소쇄원은 조선시대 조광조의 제자인 양산보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이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으로 되어 있다. 담양지역 여행을 하면서 담양 소쇄원을 구경하려면 담양의 끝쪽인 광주쪽에 소재하기 때문에 제법 이동거리가 멀어지기도 한다.

 

 

소쇄원은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원이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양산보가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화를 입자 시골로 은거하러 내려가 지은 별서정원으로,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도 첫손으로 꼽힌다. 1983년 7월 20일에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5월 2일에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담양소쇄원은 광주댐을 지나서 오르내림이 심한 지방도를 거처서 들어왔다. 소쇄원은 행정구역상 담양이지만, 아마도 광주에 가까운데, 도로변에 인접해 있어서 관람하기는 편했다. 소쇄원 입구에 들어서서 2천원씩 입장료를 내고, 작은 실개천을 끼고 조금 오르면 대나무 숲이 울창한길을 따라서 조금 오르면 소쇄원이 보인다.

 

 

소쇄원은 산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을 끼고 비탈진 언덕위에 건축물들이 보인다. 계곡의 건너편 진입로에서는 소쇄원의 전체적인 배경이 한눈에 조망되는 가운데, 추운 동절기에도 이곳을 돌아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니 정감있는 조선시대 돌담장에 기와를 씌운 담장과 초가정이 먼저 맞이한다.

 

 

소쇄원 입구의 담장길을 걷다보면 계곡물이 흘러 내리는곳에 담장의 아랫쪽으로 계곡물이 흘러 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바로 옆쪽에는 오곡문은 내원 북동쪽 담장에 있었던 문으로 문은 없어지고 담장에 현판만 보존되었다. 초가정 앞쪽에 작은 연못은 멀리서 통나무 수로를 이용해서 물을 끌어 들이는 지혜를 엿볼수 있다.

 

 

소쇄원에 들어서서 전체적으로 보이는 건축물중에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제월당은 안채에 해당하며 방과 대청으로 구성된 평범한 가옥이다. 그러나 주인이 기거하였을 주 공간으로, 제월당 우측에서 들여다보면 내부에는 소쇄원사십팔영과 소쇄원을 주제로 한 시가 걸려있다. 제월당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썻다고 한다.

 

 

제월당은 작은 규모의 건축물이지만, 사방으로 담장이 둘러쳐진 구조이고, 작은 대문을 나와서 돌계단을 내려서면 광풍각이라는 또 하나의 건축물이 있다. 소쇄원의 중심건물로 사랑채에 해당하는 광풍각의 뒤뜰에는 복숭아 나무가 있는 도오가 있다고 하는데, 요즘은 정자각 형태의 건축물이라서 썰렁한 느낌이 든다.

 

 

소쇄원은 조선시대 별서정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름대로 모든 풍경 하나하나에 의미가 깊다는 문헌은 있으나,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입장에서는 소박한 양반들의 머물던 별장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 은거했던 양산보라는 인물의 역사적인 배경을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한바퀴 돌아 보는데 그치게 된다.

 

 

알고보니 조선시대 당시의 별서정원인 소쇄원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다시 복원, 중수하여 현재 2동이 남아 있다고 한다. 소쇄원은 조성중기 호남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의 교류처 역할을 하였고, 송강 정철, 등이 드나들면서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입구에 현재는 넓은 마을길이 나있으나 1970년만해도 좁은 길이었으며, 계곡을 따라 광풍각에 이르는 길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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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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