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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곡사는 아산시 송악면의 남단 봉수산의 동북 계곡에 위치한 고찰이다. 울창한 송림으로 에워싸인 진입로와 배산이 청정도장의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 조선시대의 승람과 지리지에는 "석암사"라 했으며 1929년 환여승람에 "봉곡사"라 한 것으 로 보아 사명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사찰입구 안내판에 신라51대 진성여왕 원년(887년) 2월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18대 의종(1170년)때에 보조국사가 중창했으며 세종조(1419년)에 함허대사가 삼창하였는데, 이 때는 상암, 벽련암, 보명암, 태화암 등의 암자가 있었다한다.
임진왜란 때에 본전과 여섯 암 자가 폐허된 것을 인조24년(1647년) 다시 중창하고 정조18년(1794년) 중수하여 봉곡사라 개칭했다. 고종7년(1891년)에 서봉화상이 법당 및 요사를 중수 현존한다. 계곡을 앞에 두고 800여평의 사역을 조성하였는데 대웅전과 향각전은 나란히 동향에 있고 그 북쪽으로 "ㅁ자형"의 큰 요사체가 있다. 요사 뒷편에 지대를 낮추어 측간과 허드레광이 마련되고, 사역 입구에서 남쪽 둔덕 위에 삼성각이 있다. 향각전과 상성각은 근년에 세워진 반면 대웅전과 요사는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의 구조를 간직하고 있어 1891년 서봉화상에 의한 중수 기록과 걸맞은 것으로 판단된다.
空山理氣古今外(빈 산 이치 기운 고금 밖인데) 白雲淸風自去來(흰구름 맑은 바람 스스로 오고 가누나)
何事達摩越西天(무슨 일로 달마는 서천을 건너 왔는고) 鷄鳴丑時寅日出(축시엔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오르네)
찬란한 불교문화의 전성기인 통일신라시대 부터 전통을 이여받아 천년의 새월을 흐르는 동안에 수많은 외침과 국난으로 사찰이 소실되었다가 복원되면서, 명맥을 이어받은 전통사찰들은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체 어느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찰은 없다. 전국에 사찰을 답사하다 보면 모두 전통과 역사가 깊어서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는게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사찰이든 특색있는 한두가지만이라도 기억하면 쉽게 떠올릴수 있다.
이곳 봉곡사는 울창한 소나무 숲속길과 만공선사가 법계성을 깨닫고 오도송을 읊은 불교 성지이며 그를 기리기 위해 특색있게 세워진 만공탑이 있다는 것 만이라도 확실하게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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