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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법흥사로 답사를 떠났다.
첩첩살골이라 법흥사 계곡 입구부터 도로가 결빙되어 있었고, 겨울날씨가 갑자기 변덕스럽게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차피 답사 떠난길 눈보라가 친다고 포기할수는 없었고 함박눈을 맞으며 답사를 마칠수 있었다.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가 중국 종남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발우 등을 전수받아 사자산(연화봉)에 불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라 개창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인 불보 사찰이다.
'적멸보궁'이란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
이란 뜻이라한다.
본래 사자산 법흥사의 지명 유래는 산세가 불교의 상징 동물인 사자형상의 허리와 같은 모든 지혈이 한 곳에 모이는 길지 이며, 뒤의 산봉우리가 불교의 상징 꽃인 연꽃 같이 생긴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주면 소재지에서 법흥사 계곡을 구비구비 돌아서 약 10km정도 들어가니 최근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이는 다리와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에서 산길을 따라서 한참을 올라서니 넓은 주차장이 보이며, 우측으로 법흥사 입구가 보인다.
입구로 들어가는 루각의 아래층에는 금강문,2층에는 원음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사찰경내가 워낙에 광범위해서 입구에서 배치도를 한번쯤 살펴보고 돌아보았다.

우선 좌측 방향으로 부터 돌아보니 아주 오래된 목조 건물이 보이는데 극락전이라 한다.

극락전 맞은편에 범종각에는 거대한 동종이 비치되어 있다.

좌측으로 맨 끝쪽으로 산자락 앞에 보이는 삼성각이 있다.

극락전 우측으로 보이는 징효대사 부도는 8각원당형을 기본으로 삼았으며, 二板石(이판석)으로 구성된 방형의 지대석 위에 건립되어 있으며, 강원도 지정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어 있다

법흥사는 예전에는 흥녕선원(흥녕사)이라 하였으며, 홍수와 산사태로 법당 앞의 석탑과 옛 절터가 유실되고 남은 흔적으로 강원도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징효대사 부도전 바로 앞쪽으로 보이는, 보인탑비는 징효대사는 철감국사 도윤의 제자로 흥녕사(법흥사의 옛이름)에서 선문을 크게 중흥시킨 인물이다. 그의 부도비는 보물 제612호로 지정돼 있다.

우측으로 보이는 종무소 건물은 2개동이 ㄱ자 형태로 배치되어있다.

우측 맞은편으로 보이는 종무소 건물

우측 언덕 아래쪽에는 최근년에 중건한것으로 보이는 식당요사채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만다라전

중대요사채로 불리우는 법운당

제2보궁으로 불리는 약사전

약사전 뒤쪽으로 보이는 산신각

적멸보궁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약수터

경내 입구에서부터 적멸보궁까지 양 옆으로는 쭉쭉 뻗은 소나무 수백 그루가 있는 길을 따라서 약 500 미터쯤 올라가면 언덕위에 나타난다. 적멸보궁은 높고 긴 석축을 쌓아 넓은 대지를 마련하고 그 중앙에 기와로 지은 집이다. 넓고 큰 돌들을 엮어 1단대의 지대를 마련한 위에 목조건물로서 법흥사에서 제일 높고 깊은 산중에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곳이다.

적멸보궁 뒤 토굴 옆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불사리를 모셔올 때 사리를 넣고 사자 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이 남아있다. 이 석함은 한 개의 장방형 돌로 이루어졌다. 사리탑은 석조부도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법흥사 적멸보궁 뒤 사리탑 바로 옆에는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이 있는데, 뒷편의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 흙으로 석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 위를 덮었다.
입구 쪽 정면은 높고 뒷편은 경사 때문에 약간 봉긋한 모양의 원형으로 마치 무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법흥사의 유적으로는 옛 흥녕선원의 위세를 짐작하게 하는 3개의 석탑과 1개의 수호석불좌상,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 적멸보궁, 사리탑(강원도 유형 문화재 73호), 흥녕사 징효대사 보인탑(보물 612호), 징효대사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 72호), 흥녕선원지(강원도 지정 기념물 6호)가 있고 종이가 없던 시절 인도 영라수 잎에 범어로 기록한 패엽경 등의 소중한 삼보종재등 소중한 문화재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찬란한 불교문화의 도입으로 전국적으로 어디를 가나 심산유곡에 많은 사찰과 암자들이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으면서 사찰 나름대로 소중한 문화재와 보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이곳 법흥사는 신라시대 말에서 고려시대 초까지 성행했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이 번창할 때는 2천여 명에 이르는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행했는데 공양 쌀을 씻으면 쌀뜨물이 10리 밖에 있는 수주면 무릉도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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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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