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안길의 농로를 따라서 구불구불한 길을 약500m 정도 들어가니 지하도 교량에 용담사라는 글자가 보였다. 지하도를 지나서 비포장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숲속에 거대한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불교에서 말하는 약사불이란 질병과 무지의 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이라고 한다.
이 거구의 석불입상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장륙불상 형태로 세워져 있으며 1장 6척(5m45cm) 로 표현하고 있었다. 상체가 짧고 하체가 긴 다소 불균형스러운 불상이지만 얼굴이나 옷주름의 뛰어난 조각솜씨 때문에 우수한 불상으로 돋보이고 있으며, 맵시 있는 이·목·구·비, 잔잔한 미소 등은 고려시대의 독특한 불상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산 평촌리는 아산시에서 남쪽으로 39번 국도변 약 5km지점에 우측으로 표지판이 있다.
석조약사여래입상을 보기위해 마을 안길의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산중턱에 시골주택이 보이는데, 이곳에 작그마한 용담사라는 낡은 간판이 보인다.
보물 536호인 아산평촌리석조약사여래입상 정면의 모습
보물 제536호. 높이 545cm.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거불(巨佛)이며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우뚝 솟아 있고,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양각되어 있으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어 자비로운 부처의 얼굴을 잘 나타내었다.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불신(佛身)은 평판적이며 양 어깨에 걸쳐진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양팔과 무릎 부분에서 옷주름이 도식적으로 처리되었는데, 이것은 고려시대 불상의 한 특징이다. 양 무릎의 동심원 주름은 통일신라 불상인 삼화령 미륵삼존불의 본존이나 순흥 석교리 석불입상(보물 제116호) 등에서도 보이는 특이한 수법이다. 양손은 가슴 앞에 모아 약합(藥盒)을 들고 있어 이 불상의 명칭이 약사불(藥師佛)임을 알 수 있으며, 손 모양과 손가락의 표현이 생동감이 있어 흥미롭다. 대좌 위에 있는 양발은 5m가 넘는 거구에 비해 작은 편이다. 규칙적인 옷주름, 짧은 목, 움츠린 어깨, 꼿꼿한 직립자세 등의 부자연스럽고 도식화된 면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다음백과)
문화재청에서 새워놓은 안내문에는 고려초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원본의 글자가 잘보이지 않아서 탁본이라도 해야 보일것 같았다.
보물 536호인 석조약사여래입상의 뒤쪽에는
용담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으나 추운날씨라 굳게 문을 닫은체 고요하기만 했다.
용담사라는 작은 암자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의 약사여래입상은 얼굴의 형태미와 함께 고려시대 석불상의 우수한 작품임을 단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더구나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합장하고 있는 두손은 중생들이 앓고 있는 심신의 병마를 없애 주는 자비로운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이 불상을 찾는 참배객들에게 환희심을 더욱 일으키게 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불교문화의 도입된 이후 전국 곳곳에 유물과 유적들이 무진장 많이 있다.
그만큼 찬란한 불교문화가 우리 선조들에게 마음 깊이 간직되어 있었기에 아직도 전국 심산유곡에는 천년고찰들이 여전히 전통을 이어오면서 값진 유물,유적,보물들을 깊이 소장하고 있다. 유적지나 유물들을 답사 다니다 보면 불교적이 색체를띠는 표현을 많이 할수 밖에 없지만 필자는 전혀 종교와 무관한 무신론자로서 선인들에게 물려받은 찬란한 문화를 길이 보존하는 모습들을 소개할 뿐이며, 종교적인 이념을 떠나 선인들의 얼을 되새겨 보는 장으로 활용하고자 간단하게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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