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그 후 문성왕 2년(840년)에 진감선사가 대찰로 중창시킨 후 887년 정강왕이 선사의 도풍을 앙모하여 '쌍계사'로 개칭하였다한다. 지금의 절은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인조 10년(1632년)에 벽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라 하는데, 봄철의 벚꽃이 특히 유명하며 계곡의 맑은 물, 기암과 고목들이 어울려 빼어난 경승을 이룬다. 경내 볼거리로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친필 쌍계석문,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47호)를 지나 북쪽 500m 거리의 국사암 뜰에 천연 느릅나무(사천왕수), 또한 동북쪽으로 2km 남짓거리에 청학봉과 백학봉의 두 계곡을 끼고있는 높이60m, 폭3m의 불일푹포(지리산 10경 중의 하나) 등의 이름난 곳이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 보물 3점(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의 많은 문화유산, 칠불암, 국사암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쌍계사를 들리려면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란히난 10리 벗꽃길 어느길로 진입해도 갈수있으나, 좌측길은 벗꽃나무 전망이 좋고, 우측길은 벗꽃나무는 화려하지 않으나 차들이 적어서 소통하기는 편하다. 벗꽃나무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6km 지점에 대형주차장이 있으며, 이곳에서 조금더 올라가서 쌍계1교를 건너가면 쌍계사 입구로 진입할수있다.
사찰입구에는 어디를 가도 볼수있는 풍경이지만 관광객들의 입맛을 당기게하는 파전에 동동주, 도토리묵등을 팔고있는 몇개의 식당과, 야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농산물을 팔고있는 할머니들이 많이 보인다.
파전에 동동주의 유혹을 뿌리치고, 조금더 올라서니 사찰안내판이 커다랗게 보이고, 조금 앞쪽에는 매표소가 있다. 일명 문화제 관람료를 1,800원씩 내야 입장할수있다.
쌍계사 입구에는 문설주 같이 우뚝솟은 큼직한 바위의 좌우의 왼쪽은 '쌍계'그리고 오른쪽엔 '석문'이라고 새겨진 바위는, 최치원선생의 친필이 새겨져있다. 지금은 이 곳 오른편으로 새 길이 뚫려서 이 통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쌍계사를 탐방하는 사람들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다.
사찰경내에 진입하려면 속세를 떠나 불도에 들어서는 첫째 관문을 통과하는 일주문이 있는데, 항상 한마음 한뜻으로 수도정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한다. 이사찰의 특징은 일주문과,금강문, 천왕문이 경사로를 따라서 일렬로 배치되어있다.
두번째로 통과하는 문은 금강문으로, 건축양식은 단층 맞배기와집으로 익공식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측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정면 어간을 개방하고 양측간을 벽체로 막아 금강문이나 사천왕문의 일반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세번째로 통과하는 문은 천왕문으로 사천왕을 봉안한 문이다. 사천왕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들과 선인을 돕는 네 분의 신이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서주를 다스리는
광목천왕, 남주를 다스리는 증장천왕,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의 네 분이라한다.
쌍계사 구층석탑 고산스님이 인도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 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셨다.
이석등은 절안에 어둠을 비출뿐아니라, 빛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춤으로서 중생을 깨우쳐서 선한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언제나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과 함께 법당앞에 배치하게된다.
이 비는 국보 47호인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고색창연한 비석으로 신라 진성여왕 원년 (887)에 건립되었다. 신라 헌강왕의 칙명에 의해 신라 최고의 문호 최치원선생이 글을 짓고 환영스님이 각자하여 쓴 진감선사의 전기비이다.
이 대웅전은 진감선사가 신라 문성왕 2년(840년) 초창한 이래 조선 인조 19년(1641년) 벽암 각성스님의 중수, 숙종 21년(1696년) 백암 성총스님의 중수, 영조 11년(1735년) 법훈스님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국보 47호인 진감선사 대공탑비를 지나서 위쪽으로 배치되어있다.
이 전각은 나한전으로 주불인 석가여래와 16나한을 모시고 있으며, 신라 46대 문성왕 2년(840년) 진감선사가 초창하였고 조선 인조 19년(1641년) 벽암선사가 중수하였다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경내의 명부전과 흡사하다.
쌍계사 마애불은 대웅전 동쪽 경내에 있는 큰 암석 한면을 움푹 들어가게 파내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두껍게 양각하였다. 그러므로 감실안에 봉안한 것 같이 보이는 특이한 불상이다. 이 불상은 마치 승상으로 보일 만큼 소박한 형상이며 조성년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이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위시하여 명부 시왕이 안치된 전각으로 조선 숙종 13년(1687년) 성안대사가 창건하였고, 숙종 36년 (1710년) 신민대사가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것이라한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명산 아래에는 유명한 사찰이 있게 마련이다. 유명한 사찰들은 불교문화의 전파된지 천년이 넘었으니 당시에 건립된 고찰들은 그만큼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오랜 새월을 어렵게 지켜온 국보급 문화제와 보물들이 많기때문에, 이를 관람하기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고찰을 돌아보기 위해 연중 끊임없이 북적대고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어떤 종교적인 믿음이 전혀없은 무신론자지만 옛선인들의 얼을 되새겨 보고자 사찰탐방을 가끔한다.
사실 사찰이야기 포스트 써봐야 블로그에서 제일 인기없은 포스트지만, 그래도 유구한 천년새월을 굿굿히 지켜온 소중한 보물들을 돌아보고나서, 선인들의 얼을 기릴수 있는 정보를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기 위해서 포스팅을 하고있다. 천년의 새월을 지켜온 소중한 우리민족의 얼이 담긴 국보급 문화재들을 지금껏 잘지켜 왔지만, 앞으로도 더욱 잘보존하고 후손대대로 물려줄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종교와 이념을 떠나서 그 문화를 존중해주고 소중하게 지켜야할 문화유산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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