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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방곡곡에 꽃내음이 향긋하게 코끝을 진동하는 봄날에 집안에 들어박혀 있기는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카메라 둘러메고 따사로운 햇살 맞으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주말이다. 옛날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나서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넣고 싶은 충동이다. 단일규모로는 국내에서 제일 크다는 충남 예산에 있는 예당저수지를 한바퀴 일주하면서 깊어가는 봄을 한껏 느낄수 있다. 저수지를 한바퀴 일주하다보면, 예산군 대흥면을 만날수 있었고, 도로변에 대흥동헌이라는 안내간판을 따라서 마을 안길로 들어간다.
마을 입구에 200년이 넘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길손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대흥면사무소 바로옆에 대흥동헌이란 조선시대 옛 건물이 뚜렸하게 눈에 들어온다. 동헌이란 고을의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을 말하는데, 생활처소인 내아, (서헌)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동헌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수령이 주재하는 관청의 본 건물이다. 정문 안에 다시 담을 둘러 수령이 직접 공무를 수행하는 외아와 수령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내아를 두고 외·내아는 다시 담이나 행랑으로 구분한다. 동헌이란 명칭은 외아가 내아의 동쪽에 있는 데서 연유했다. 그러나 동헌이 그냥 관아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 외동헌, 내동헌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한다.
이제 완연하게 깊어가는 4월 중순의 예당저수지 주변은 시원하게 확트인 잔잔한 수면을 지키며, 한적하게 새월을 낚고있는 태공들로 즐비하다.
드넓은 예당저수지를 끼고 한바퀴 일주하다가, 도로변에 대흥동헌이라는 표지판을 따라서 마을 안길로 접어드니, 수령이 200년 넘은 느티나무가 길손을 반갑게 맞이 해주고있다.
일제 강점기 대흥동헌을 면사무소로 사용하다가 해방이후 바로 옆에 신축하였다는 아담한 대흥면사무소 바로 옆에 대흥동헌이 나란히 배치되어있다.
대흥면사무소 바로 앞쪽으로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인 작은 공원을 만들고 있는 공간에 우뚝 솟아 보이는 정자각이 뚜렸하게 눈에 띄인다.
주변환경을 돌아보고 면사무소 좌측으로 대흥동헌을 돌아보기 위해 느티나무 뒤쪽으로 들어간다. 대흥동헌은 현재는 규모가 아담하게 보이지만, 여지도서에 아사로는 구동헌 9칸, 신동헌 16칸이라 기록되어 있어 지금의 동헌은 신동헌으로 추측이 되며, 중앙에 정청인 대청이 있고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대흥군의 관아는 조선시대 대흥군의 현청으로 객사에는 정청 3칸, 동대청 12칸, 은사정 14칸, 서헌방 16칸, 하마대 4칸이 있었다. 그러나 이 관아 내에는 동헌과 그 앞에 임성아문의 현판이 걸린 아문만이 남아있다.
대흥동헌은 전면으로 반칸 넓이의 툇마루가 이어져 있고 북쪽으로 2칸 규모의 대청이 있는데 중앙의 대청은 연등천정으로 되어있고 퇴칸의 천정은 우물반자 형태의 눈썹천장으로 된 특이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대흥현 동현은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인데 상량문에 영락 5년(1407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대흥향교와 함께 조선 태종때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나 강희 42년 (1703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때에 대흥이 군으로 승격될 당시 중수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멋진 전통기와 목조건물인 대흥동헌은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이어서 동헌의 뒤쪽으로 돌아가보았다. 뒤편에는 옛건물에서 흔히 볼수있는 커다란 굴뚝 2개가 나란히 우뚝 솟아있고, 내아로 통하는 아담하고 좁은 쪽문이 보인다.
내아로 통하는 작은 쪽문 옆쪽에는 나란히 비가 서있는데, 역사적인 정확한 근거는 필자의 실력부족으로 판독을 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아로 통하는 작은 쪽문을 통하여 안쪽을 들여다보니, 마당에는 항아리들이 가득들어차 보인다.
아담한 내아건물의 마당에는 담장가에 커다란 벚꽃나무에서 꽃잎이 솓아져서, 마당이 온통 함박눈이 내린듯하다.
옛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부뚜막위에 검은색 무쇠솥이 보이고, 아궁이에 장작을 피던 흔적이 잠시나마 옛날을 머리속에 연상하게 만든다.
뒤뜰의 한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깊어가는 봄날을 느끼게 하는 벚꽃잎이 하얗게 둥둥 물위에 떠있다.
동헌의 뒤뜰쪽으로 내아건물에 고풍스런 문과 아담한 튓마루가 눈에 들어온다.
동헌과 내아건물의 사이에 둘러처진 담장앞에는 커다란 벚꽃나무에 탐스런 벚꽃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눈송이처럼 날리고 있어 깊어가는 봄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수 있게 한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위치한 대흥 동헌은 조선 초인 태종 7년(1407)에 창건되었고, 현재의 동헌 건물은 일제의 강점 후 대흥현이 예산군에 통합되면서 동헌 건물을 대흥면 사무소로 개조하여 해방후 까지 사용하다가 대흥면 사무소를 현 위치로 신축하면서, 1979년에 해체 복원되었다. 대흥 동헌은 옛모습의 기본 구조가 잘 남아있고, 예산 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유일한 관아 건물이며 1405년에 건립된 대흥 향교와 함께 대흥 지역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로서 역사적, 건축학적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이라한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지방의 곳곳에는 옛날의 역사를 묵묵하게 말해주는 향교와 동헌들을 비롯하여 많은 옛날 문화재들이 많이 보존되고 있다. 비록 이곳에 현존하는 대흥동헌이 600년이란 오랜 새월을 고스란히 간직하지 못하고 몇번의 중수를 통하여,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수 있었던 것이라도 다행이라 생각해본다. 이날 우연한 기회였지만, 이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조선시대 600년전의 역사를 잠시나마 머리속에 그려보면서, 선인들의 얼을 기릴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마을 입구에 200년이 넘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길손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대흥면사무소 바로옆에 대흥동헌이란 조선시대 옛 건물이 뚜렸하게 눈에 들어온다. 동헌이란 고을의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을 말하는데, 생활처소인 내아, (서헌)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동헌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수령이 주재하는 관청의 본 건물이다. 정문 안에 다시 담을 둘러 수령이 직접 공무를 수행하는 외아와 수령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내아를 두고 외·내아는 다시 담이나 행랑으로 구분한다. 동헌이란 명칭은 외아가 내아의 동쪽에 있는 데서 연유했다. 그러나 동헌이 그냥 관아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 외동헌, 내동헌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한다.
이제 완연하게 깊어가는 4월 중순의 예당저수지 주변은 시원하게 확트인 잔잔한 수면을 지키며, 한적하게 새월을 낚고있는 태공들로 즐비하다.
드넓은 예당저수지를 끼고 한바퀴 일주하다가, 도로변에 대흥동헌이라는 표지판을 따라서 마을 안길로 접어드니, 수령이 200년 넘은 느티나무가 길손을 반갑게 맞이 해주고있다.
일제 강점기 대흥동헌을 면사무소로 사용하다가 해방이후 바로 옆에 신축하였다는 아담한 대흥면사무소 바로 옆에 대흥동헌이 나란히 배치되어있다.
대흥면사무소 바로 앞쪽으로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인 작은 공원을 만들고 있는 공간에 우뚝 솟아 보이는 정자각이 뚜렸하게 눈에 띄인다.
주변환경을 돌아보고 면사무소 좌측으로 대흥동헌을 돌아보기 위해 느티나무 뒤쪽으로 들어간다. 대흥동헌은 현재는 규모가 아담하게 보이지만, 여지도서에 아사로는 구동헌 9칸, 신동헌 16칸이라 기록되어 있어 지금의 동헌은 신동헌으로 추측이 되며, 중앙에 정청인 대청이 있고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대흥군의 관아는 조선시대 대흥군의 현청으로 객사에는 정청 3칸, 동대청 12칸, 은사정 14칸, 서헌방 16칸, 하마대 4칸이 있었다. 그러나 이 관아 내에는 동헌과 그 앞에 임성아문의 현판이 걸린 아문만이 남아있다.
대흥동헌은 전면으로 반칸 넓이의 툇마루가 이어져 있고 북쪽으로 2칸 규모의 대청이 있는데 중앙의 대청은 연등천정으로 되어있고 퇴칸의 천정은 우물반자 형태의 눈썹천장으로 된 특이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대흥현 동현은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인데 상량문에 영락 5년(1407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대흥향교와 함께 조선 태종때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나 강희 42년 (1703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때에 대흥이 군으로 승격될 당시 중수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멋진 전통기와 목조건물인 대흥동헌은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이어서 동헌의 뒤쪽으로 돌아가보았다. 뒤편에는 옛건물에서 흔히 볼수있는 커다란 굴뚝 2개가 나란히 우뚝 솟아있고, 내아로 통하는 아담하고 좁은 쪽문이 보인다.
내아로 통하는 작은 쪽문 옆쪽에는 나란히 비가 서있는데, 역사적인 정확한 근거는 필자의 실력부족으로 판독을 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아로 통하는 작은 쪽문을 통하여 안쪽을 들여다보니, 마당에는 항아리들이 가득들어차 보인다.
아담한 내아건물의 마당에는 담장가에 커다란 벚꽃나무에서 꽃잎이 솓아져서, 마당이 온통 함박눈이 내린듯하다.
옛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부뚜막위에 검은색 무쇠솥이 보이고, 아궁이에 장작을 피던 흔적이 잠시나마 옛날을 머리속에 연상하게 만든다.
뒤뜰의 한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깊어가는 봄날을 느끼게 하는 벚꽃잎이 하얗게 둥둥 물위에 떠있다.
동헌의 뒤뜰쪽으로 내아건물에 고풍스런 문과 아담한 튓마루가 눈에 들어온다.
동헌과 내아건물의 사이에 둘러처진 담장앞에는 커다란 벚꽃나무에 탐스런 벚꽃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눈송이처럼 날리고 있어 깊어가는 봄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수 있게 한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위치한 대흥 동헌은 조선 초인 태종 7년(1407)에 창건되었고, 현재의 동헌 건물은 일제의 강점 후 대흥현이 예산군에 통합되면서 동헌 건물을 대흥면 사무소로 개조하여 해방후 까지 사용하다가 대흥면 사무소를 현 위치로 신축하면서, 1979년에 해체 복원되었다. 대흥 동헌은 옛모습의 기본 구조가 잘 남아있고, 예산 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유일한 관아 건물이며 1405년에 건립된 대흥 향교와 함께 대흥 지역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로서 역사적, 건축학적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이라한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지방의 곳곳에는 옛날의 역사를 묵묵하게 말해주는 향교와 동헌들을 비롯하여 많은 옛날 문화재들이 많이 보존되고 있다. 비록 이곳에 현존하는 대흥동헌이 600년이란 오랜 새월을 고스란히 간직하지 못하고 몇번의 중수를 통하여,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수 있었던 것이라도 다행이라 생각해본다. 이날 우연한 기회였지만, 이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조선시대 600년전의 역사를 잠시나마 머리속에 그려보면서, 선인들의 얼을 기릴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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