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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반도의 주산인 영취산은 예로 부터 지역민들에게 신령스런 산으로 인식되어 기우제나 치성을 드렸던 곳이다. 매년 3월하순이면 진달래가 만발하여 진달래산으로 널리 알려진 영취산 자락에는 아담한 흥국사가 자리하고 있다.  흥국사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의 융성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된 사찰이다. 흥국사란 사명은 ‘절이 잘되면 나라가 흥하고,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한다’라며 국가와 절이 하나라는 공동운명체 틀 속에서 지어졌다고한다. 

여천 공단 가까이에 위치한 영취산의 깊은 숲속에 보조 국사가 1195년에 창건한 흥국사 안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 팔상전 등 문화재가 많이 있다. 흥국사는 임진왜란 때 우리 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수군 승병이 있었던 곳이다. 이때 흥국사 안에서 수군승병 300여 명이 훈련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왜란과 호란 등 전쟁속에서 승병을 모집하고 외적과 대항한 것도 이같은 공동운명체의 원력을 실천한 것입니다. 고통 받는 민족과 백성을 절 안에서의 수행을 통해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현실 속에서 적극적으로 고통의 근원을 해결하는 자비를 실천한 도량이 바로 흥국사다.

일주문은 절의 입구를 표시하는 문으로, 이곳에서부터 절의 경내이니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들어오라고 알려주고 있다. 영취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곳을 통과해야하며 여기서 문화제 관람료 2천원을 내고 입장한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좌측으로 흥국사 부도밭이 보이며, 총 12기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모셔진 부도의 연대는 흥국사는 모두 조선중기 이후의 부도들이다. 흥국사의 연혁에서 알 수 있듯이 창건 시기는 오래되었으나, 조선중기 이후 번성하기 시작한 연유로 생각된다

흥국사의 입구에 있는 붉은 흙을 깐 홍교의 수려한 모습은 보물의 가치를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예전에는 절의 입구에 홍교가 만들어져 있어 이를 통해 개울을 건넜을 것이나, 현재는 새로 진입로가 만들어져 홍교를 건너보려면 일부러 돌아서 가야한다.

개울을 따라 꽤 긴 거리의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진입로 끝에 영취산흥국사중수사적비가 세워져 있다.귀부의 경우, 조선중기의 조각답게 매우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그 표정이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등에는 거북이 등 모양의 육각형 모양을 조각했으나 역사의 흐름에 따라 풍화되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고 있다. 
 

사적비를 지나 오른쪽을 보면, 영취교, 천왕문, 봉황루, 법왕문, 최종적으로 대웅전까지 만들어지는 동선은 원래 직선적이었다고 한다. 즉 봉황루 하부를 통해 진입 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근래 봉황루 하부 계단을 막고 이곳을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측면을 통해 진입하도록 변경했다고 한다.

 경내에 들어가는 첫번째 관문인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전각이다. 사천왕은 원래 고대 인도종교에서 숭상되던 귀신들이었는데 석가모니에게 귀의해서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봉황루를 돌아서면 범종각과 법왕문, 선불당, 봉황루로 만들어지는 작은 마당이 나오게 된다. 이 작은 마당은 대웅전 영역으로 진입 이전의 점이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그 크기에 있어 적당하며, 법왕문으로 오르는 넓은 계단의 존재가 더해져 관찰자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요소로 표현되었다.

선불장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으로 지어진 누각이며,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이란 뜻이라한다.
 

경내에 들어서면서 좌측으로 보이는 2층건물은 유물전시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흥국사 배치에서 가장 특이한 요소는 전체 건물들 한 중앙에 법왕문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법왕문 내부에는 경배대상으로서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다. 단지 비어있는 공간으로 전체 배치에 있어 영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법왕문을 지나 대웅전 마당에 다다르면 대웅전, 심검당, 적묵당 및 법왕문에 의해 형성되는 또 다른 마당에 다다르게 된다.


대웅전 축대의 여기저기에 거북과 용, 그리고 꽃게 모양을 곁들인 대웅전은 흔히 '반야수용선'이라한다. 이는 고통의 연속인 중생을 고통이 없는 세계로 건너게 해주는 도구가 배이며, 이 배는 용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바로 용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웅전 앞뜰에 있는 석등도 역시 거북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흥국사 대웅전 은 빗살문을 달아 전부 개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대웅전의 계단 양쪽에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신성한 이 배를 용이 수호하고 호위한다는  뜻이다. 축대는 바다를 의미하는데, 이곳에는 게 해초 등 바다고기 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대웅전 앞 석등은 향로를 밝히는 등대로서 기존의 사찰과는 달리 거북이 등위에 조성되어있다. 

적묵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대웅전의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이며 요사채로 쓰고 있다.


심검당은 907년에 조성된 건물로 요사 겸 종무소로 쓰이며 보광전 후불탱화로 봉안되었던 불화가 걸려 있다.


대웅전 뒷 공간 오른편에 불조전을 배치했으며, 왼편에는 따로 담장에 의한 구획이 되어 있는 노전을 배치했다. 노전은 차를 달여 부처님께 공양하는 곳이고 또한 부처님을 시중드는 시자가 있는 곳이라 한다.

거대한 대웅전 옆 공간을 활용해 이곳에 무사전을 배치했다. 다른 사찰에서는 이 건물을 명부전이라 칭하는데 흥국사에서는 무사전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노전 뒤편 언덕에는 또 다른 영역이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다. 이곳을 드나드는 곳에는 일주문 형식의 작은 문이 있는데 이를 진여문이라 하며, 이 문과 담장에 의해 또 다른 독립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곳에 응진당과 팔상전이 배치되어있다.

대웅전 뒤편 오른쪽에 자리잡은 사방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은 본래 이 전각은 첨성각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해동선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지금은 주지실로 사용하고 있다고한다.

 
범종은 중생들이 진리의 범종 소리를 듣고 기쁨 마음을 내어 불도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라한다.

영취산을 오르기전에 흥국사에 들리면 이것만은 알고 관람하면 도움이 된다.
1) 영취산에 진달래꽃이 만개하는 3~4월에 들리면 진달래 축제분위기로 흥국사가 더욱 돋보인다.
2) 부처님나라로 떠나는 반야용선인 대웅전을 참배하고, 대웅전을 장엄한 조각들을 찾아 의미를 새겨본다.
3) 흥국사 홍교를 건너면서 의미를 새기고, 원통전과 팔상전도 색다른 사찰건축이니 관람하면 더욱 좋다. 
4) 이순신 장군과 일본왜장이 머물렀다는 봉황루와 심검당에 담겨진 승병들의 호국정신을 되새겨본다.


흥국사는 영취산을 주산으로 설정해 배치를 이루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서북향을 하고 있다. 현재 모든 건축물들은 지세에 따라 각기 약간 다른 좌향을 보이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주축을 설정하고 이에 어울려 모든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흥국사에는 현재 보물 6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소중한 보물들은, 대웅전 제396호, 후불탱화 제578호,홍교 제563호, 쾌불탱화 제1331호, 수월관음도 제1332호, 16라한도 제1333호,등 이외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한 호국사찰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불교문화를 시작으로 발전하여 전국 심산유곡의 맑은 계곡을 끼고있는 산자락에는 대부분 사찰들이 있으며, 사찰에서 보유하고 있는 유물과 유적, 문화제와 보물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답사를 하다보면, 많은 신화와 전설들을 들을수 있으나 때로는 어떤 유적의 일화를 들어보면 허구성 같은 얘기를 들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유물과 유적들을 소중하게 지키고자 하는 의미에서 전해오는 말이라 생각하며, 어느곳에서 보유하고 있든지 상관없이 종교와 이념을 떠나서,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지켜야할 민족의 자존심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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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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