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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더라도 전국적으로 높고 낮은 산들이 많아서 산행을 취미로 하는 필자로서는 즐거움이 아닐수 없다. 시간만 허용되면 전국의 이산 저산을 다니며 지역마다 특색있는 산세의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는것이 즐거움이 아닐수 없다. 또한 산이 있으면 산중에는 틀림없이 사찰이 있기에, 수백년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사찰들을 답사하여 그곳에서 보존하고 있는 문화제나 보물들을 접할수 있어서 역사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고있다.  

지난 주말에 다녀온곳은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으로 산행을 나갔다가 남쪽 기슭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사찰인 마곡사를 답사하게 되었다. 마곡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현재 충청남도 70여 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고한다. 마곡사의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이 설법을 전도할 때 모인 신도들이 삼밭의 삼대 같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하여 마곡사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라 한다. 이 사찰은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마곡사 진입로에는 유료주차장이 있지만 아직까지 행락철이 아니라서 차들이 많지 않았다. 사찰진입로로 차를 몰고 갔더니, 여기서 길을 막고 주차요금을 2천원 내라고 한다. 주차장에 주차도 안하고 마곡사로 가는데 무슨 주차요금을 내느냐고  반문했더니, 편의상 통과시키는 것이니 요금을 내라고 한다.

마곡사 입구에 주차를 하고나서 오른쪽을 보니까 해탈문이 보인다. 이곳은 마곡사의 대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신앙심이 없는 필자로서는 이곳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여 해탈문을 통과해보니, 중앙 통로 양쪽 편에 금강역사상과 문수동자상 등을 모셔져 있었다.

해탈문을 통과하니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은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인 영산전 보물 제800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며 현판은 세조가 이곳에 들렀을 때 직접 써서 사액한 것이라한다.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건물은 천불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영산전의 내부에는 ㄷ자 모양의 형태로 천불들이 가득들어차 있었다. 

영산전 앞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매화당은 스님들의 요사용 건물로 1983년에 신축하였다한다. 조선 후기 양식을 모방하여 연봉과 연꽃으로 장식한 익공을 사용하였으며 팔작지붕의 양식으로 보인다.

천왕문은 조선 후기에 세웠으며, 건물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아 1910년에 고쳐 지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서 두번째 있는 대문인 천왕문 천장은 지붕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안쪽에는 동서남북 4지역을 지키는 무서운사천왕상이 지키고 있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좌측으로 편액이 낡아 보이는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모시고 있어 지장전·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모든 인간을 교화시키는 역할을 맡았으며, 시왕은 염라대왕을 비롯한 10명의 지옥 심판관이라한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거쳐서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있는 극락교가 있으며, 극락교를 건너면 마곡사의 중요건물인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우뚝 솟아있는것이 보인다.

극락교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은 상류로부터 얼음이 해동되어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으며, 극락교위에서 내려다보면 시골 계곡물에서만 사는 중태기, 버들치등이 떼지어 노니는 모습이 보인다.

극락교를 건너서 보이는 범종루 지붕의 형태가 특이하게 보이며,뒤쪽으로는 사찰의 종무소가 있다.

마곡사 마당에 들어서면 주건물인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일직선상에 놓여있으며, 대웅보전은 목조 2층건물이라서 대웅보전의 뒤쪽으로 입체적으로 보인다.

대광보전은 보물 8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로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불에 타버렸던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 것이라한다. 이 건물은 뒷편의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으로서 경내의 전체 건물배치상으로는 해탈문· 천왕문과 일직선상에 놓이어 가장 중심되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보물 801호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은 다른 사찰에서 볼수없는 특이한 형태로 2층 목조건물로 되어있으며, 이 법당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킬 때(1651)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대웅보전은 특이한 형태로 2층 목조건물로 건축되어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각지붕형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건물 2층에 걸려 있는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한다.
 

대광보전의 앞마당에 우뚝 서 있는 마곡사 5층석탑은 보물 79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마곡사는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 김구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찰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조국광복후 이곳을 찾아 대광보전 가운데 문 좌우에 걸려 있는 각내관세간(却來觀世間),  유여몽중사(猶如夢中事), 즉 "돌아와 세상을 보니 마치 꿈 속의 일 같구나."라는 주련을 보시고 더욱 감개무량하여 은둔생활을 하시던 때를 회상하며 향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한다.


대웅보전에서 내려다보는 가람배치는 대부분 건물들이 밀집해있는 풍경으로 보인다. 이곳 마곡사는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유물로 금물이나 은물로 베껴 쓴 필사 불경들이 지금도 여러 점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려후기 불교문화의 대표적 유산이기도 하다.

불교문화의 전통을 이어 수백년이 흐르는 동안에 대부분 사찰들은 전란으로 인하여 소실되고, 중건되면서 굳굳이 명맥을 위지해 오고 있다. 마곡사는 그동안 폐사되었다가 다시일으키고, 수십년을 폐사 하였다가 중건했지만 소중한 보물들을 다행히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마곡사에 관련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일대가 조선조 십승지지, 즉 전란기에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마곡사는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하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병화를 입지 않았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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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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