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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에서 송악면 방향으로 39번 국도를 따라서 약 3km정도 가다가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주공아파트 입구에는 보물 537호인 아산 읍내리 당간지주 100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문화제와 유적지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보물이 있다는 이정표를 보고 눈이 번쩍 뜨여서 이곳을 그냥지나 갈수가 없었다. 보물로 지정되었다면 깊이깊이 간직되지 않았을까 머리속에 연상 해 보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국도에서 좌측으로 구온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도로 바로옆에 있어서 쉽게 찾을수 있었다.
보물 537호로 지정된 '아산 읍내리 당간지주'는 충남 아산시 읍내동 소재에 있으며, 예전에는 읍내리라고 하였으나 요즘은 시로 승격이후 읍내동으로 불려지고있는 곳이다. 보물이라면 아주 진귀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할수 있지만, 문화제를 답사해보면 실제 특별히 볼품도 없다는 생각을 할수도 있다. 아산 읍내리 당간지주 역시 도로변에 작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당간지주란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아산 읍내리 당간지주는 아산시 읍내동 255-2 소재에 있으며, 1971년 7월 7일에 보물 537호로 지정되었다는 내용과 당간지주의 세부 내용이 안내문이 기록되어 있다.
이곳의 전체적인 배치도는 좌측에 온양마을 역사비가 새워져있고 우측으로 당간지주가 배치되어 있는데, 커다란 나무그늘에 가리워져 있으며, 울타리 안쪽으로는 깊이가 1m 정도의 깊이에 우뚝 새워져 있다.
당간지주는 절 앞에 세워 불교의식에 사용하는 불번이라는 깃발을 걸었던 게양대의 일종이다. 기단부는 땅 속에 묻혀 구조를 알 수 없으나, 지주는 높이 410cm이며 화강석 기둥을 마주 세우고 맨끝 부분을 4분원형으로 깎고, 당간을 고정시키는 직사각형의 구멍을 뚫려있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안쪽에는 깃대를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이 파여져 있다. 표면이 심하게 닳아 다른 조각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으며, 기둥 바깥쪽 두 모서리를 깎아내어 마치 세로줄무늬를 새긴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위·아래 기둥의 굵기가 별 차이없이 다듬어져 전체적으로 세련미를 보이고 있다.
당간지주가 자리하고 있는 지금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로 여겨지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양식들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북조 벌판에 연못이 있고 이 일대에서 석재와 기와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절터였던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지주의 마멸이 심하여 잘 알 수 없으나 기둥 바깥쪽의 두 모서리를 죽였을 뿐 아무 장식이 없는 간소한 형태이다. 당간지주의 연대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본래의 위치에 서 있는 듯하며, 기둥의 너비는 55cm, 두께가 35cm이다.
보물 537호로 지정된 '아산 읍내리 당간지주'는 충남 아산시 읍내동 소재에 있으며, 예전에는 읍내리라고 하였으나 요즘은 시로 승격이후 읍내동으로 불려지고있는 곳이다. 보물이라면 아주 진귀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할수 있지만, 문화제를 답사해보면 실제 특별히 볼품도 없다는 생각을 할수도 있다. 아산 읍내리 당간지주 역시 도로변에 작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당간지주란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아산 읍내리 당간지주는 아산시 읍내동 255-2 소재에 있으며, 1971년 7월 7일에 보물 537호로 지정되었다는 내용과 당간지주의 세부 내용이 안내문이 기록되어 있다.
이곳의 전체적인 배치도는 좌측에 온양마을 역사비가 새워져있고 우측으로 당간지주가 배치되어 있는데, 커다란 나무그늘에 가리워져 있으며, 울타리 안쪽으로는 깊이가 1m 정도의 깊이에 우뚝 새워져 있다.
당간지주는 절 앞에 세워 불교의식에 사용하는 불번이라는 깃발을 걸었던 게양대의 일종이다. 기단부는 땅 속에 묻혀 구조를 알 수 없으나, 지주는 높이 410cm이며 화강석 기둥을 마주 세우고 맨끝 부분을 4분원형으로 깎고, 당간을 고정시키는 직사각형의 구멍을 뚫려있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안쪽에는 깃대를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이 파여져 있다. 표면이 심하게 닳아 다른 조각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으며, 기둥 바깥쪽 두 모서리를 깎아내어 마치 세로줄무늬를 새긴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위·아래 기둥의 굵기가 별 차이없이 다듬어져 전체적으로 세련미를 보이고 있다.
당간지주가 자리하고 있는 지금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로 여겨지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양식들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북조 벌판에 연못이 있고 이 일대에서 석재와 기와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절터였던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지주의 마멸이 심하여 잘 알 수 없으나 기둥 바깥쪽의 두 모서리를 죽였을 뿐 아무 장식이 없는 간소한 형태이다. 당간지주의 연대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본래의 위치에 서 있는 듯하며, 기둥의 너비는 55cm, 두께가 35cm이다.
읍내 마을의 역사비의 정면
읍내 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비문
후면에 "건립취지는 면면히 흘런내려온 마을 역사를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가슴속에 다시 새겨 고유 전통 문화에 대한 긍지와 애착심을 부여하고 선조의 얼을 후대에 길이 보전전승하고자 이비를 세웁니다. 1992년 11월 20일 온양시장 조철연"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국보 307점과 보물이 1500여건이 등록되어있으며,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진귀한 문화재들을 볼수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전문가가 아니라면 국보와 보물을 구별하기란 쉽지가 않다. 국보와 보물의 차이점을 알아보면, 국보는 보물의 가치가 있는 것 중에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기술적 가치가 가장 으뜸인 것으로, 제작연대가 오래되고 시대를 대표하거나 가장 우수하며 특이한 것으로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있는 문화재이고,
보물은 국보처럼 시대를 대표하거나, 또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없더라도, 일반적인 지정의 수준에 이르면 보물로 지정되었다는데, 참 구별하기란 쉽지 않은듯 하다. 하지만 국보건, 보물이건, 선인들로 부터 물려받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소중한 문화재들을 잘 가꾸고 보존하여,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보물은 국보처럼 시대를 대표하거나, 또 역사적 인물과 관련이 없더라도, 일반적인 지정의 수준에 이르면 보물로 지정되었다는데, 참 구별하기란 쉽지 않은듯 하다. 하지만 국보건, 보물이건, 선인들로 부터 물려받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소중한 문화재들을 잘 가꾸고 보존하여,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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