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대문 틈사이로 들여다 보니, 넓은 공간의 안쪽으로 동헌의 건물이 보인다.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왔는데 그냥 돌아갈수는 없고 두리번 거리다 보니까 할머니 한분이 대문열쇠를 들고 부지런히 오고 있었다. 원래 관리자는 시청이지만 주위에 이웃에게 관리를 위탁했다고 한다. 조금은 기분이 언잖았지만 할머니에게, 관광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시간준수해서 대문을 개방해 줄것을 부탁하고 안쪽으로 들었갔다.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건물로, 낮은 남향의 야산을 배경으로 하여 문루와 동헌이 서 있다. 아문은 조선 고종 8년(1871)에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온주아문’ 이라는 현판은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온양군의 이름이 온주였던 것을 따서 붙인 듯하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아문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층의 문루건물이다. 아문건축에서 흔히 보는 2층의 문루 건물로 아래층은 통로로 사용하고 윗층은 누마루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다듬은 장대석 한벌을 깔아 만든 기단 위에 4각형의 기초석을 갖춘 높이 1.5m의 주형 초석을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온주아문 입구에 비석군은 관아건물에서 재임하던 군수들과 충청도 관찰사들의 선정을 기념하고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송덕비로 흔히 관아의 입구나 도로변에 세워진 것들을 한자리에 옮겨 모아 비석군을 조성하였다.
온주아문및동헌은 충남 아산시 읍내동 159번지 소재의 조선시대 건물로서, 유형문화재 1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규모는 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구조로 되어있다.
동헌은 아문을 통과하여 안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 있다. 아문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으며, 조선시대는 동헌으로 쓰이다가 1928년부터 주재소로 쓰였다한다.
해방 후에는 파출소로 쓰이다가 1986년 시승격에 따라 1988년까지 2년 동안 동사무소로 쓰였다. 그 후 1993년에 수리·복원한것으로 근세사 아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동헌은 여러차례 변형되었으나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건물로 여지도서 온양군 공해조에는 동헌 10칸, 아사 23칸, 객사 37칸, 무학당 3칸, 향청 12칸등 건물이름과 칸수가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2동의 건물만 남아 있다.
동헌의 전체적인 외관은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하고 있었으나, 실내로 들어가니 흙먼지가 많이 쌓여 있어서 좀더 깔끔한 모습을 볼수 없어 아쉬움이 있었다.
동헌의 대청마루 위쪽에 걸려있는 온주동헌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기록을한 커다란 한글 편액이 보인다.
동헌의 정면에 대청마루에는 사또가 내려다보고 죄인을 향하여 당장 호령이라도 할듯한 분위기가 떠오른다.
동헌건물의 좌측에서 본 배경
동헌의 뒤쪽에서 본 건물의 배경
동헌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본 온주아문의 후면
'아문'의 뜻을 찾아보면 조선시대 상급의 관아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충청도에는 주(州)가 다섯 곳이 있었는데, 청주, 충주, 공주, 홍주, 온주, 그래서 온주땅의 중심지에 온주아문이 들어선듯하다. 동헌은 조선 시대 지방 관아의 행정 업무가 행해지던 중심 건물이다. 정청이 보통 숙소의 동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헌으로 불렸다하는데, 동쪽에 관아를 지은 이유는 음양 사상에 있어서, 양의 기운이 동쪽에 왕성한 까닭이라한다. 동헌의 최고 통치자를 ‘사또’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사도(使道)’에서 유래되었다한다. 필자가 수백년이 지난 조선시대의 역사를 거론한다는것은 무리고, 아무튼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현존하고 있는 문화재의 역할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듯하다.
유익한 정보라고 생각하시면, view on을 꾸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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