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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산행을 즐기는 이유는 계절마다 변화하는 대자연을 만끽하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음껐 호흡할수 있기 때문이다. 몇시간 동안의 산행을 하는동안에 스스로의 마음을 수양할수있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수도 있으며, 체력을 단련도 할수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수 있어서 늘 성취감을 가득안고 돌아온다.

또한 산행을 하기위해 이동하는 동안에 산자락에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들과, 그밖에 유물, 유적들을 많이 만남으로서, 선인들의 얼을 돌이켜 볼수있는 기회가 자주 있어서 더욱 좋다. 산행을 하면서 수암산을 하산하여 세심천 온천호텔로 하산하는 길에 수암산 중턱에서 거대한 석조보살입상을 만났다.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수암산 중턱에위치한 보물 508호인 삽교석조보살입상 우뚝 서있는 위용을 볼수있었다.


세심천 온천호텔에서 수암산으로가는 등산로에서 우측으로 64m가면 삽교석조보살입상이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서 작은 계곡을 건너면 우뚝하게 위용을 자랑하는 석조보살입상이 눈에 띄인다.


등산로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서 작은 계곡을 건너자마자 약간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거구의 석조보살상입상이 솔밭사이로 우뚝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 양식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머리에는 6각형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네모난 얼굴은 소박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귀는 큰편이며 신체는 돌을 새김되어 있으며, 간략한 선으로 전의를 표현하였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는 두 다리 사이로 길게 내려와서 대석까지 이르고 있다. 소박하지만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이보살상은 목이 부러졌으나, 지금은 시멘트로 접착시켜서 다행이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삽교 석조보살입상은 충남 예산군 삽교읍 신리 산 16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불상의 높이는550cm 이고, 어깨의 너비는 100cm, 둘레는 374cm로서, 거대한 화강암 2개를 조립하여 세워져있다.


석조보살입상은 거구이면서 불륨없는 돌기둥 형태이며 간략한 신체표현 방법 등이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과 유사한 양식을 가진 지방적인 특징으로 보인다.


석조보살입상은 괴체화된 신체는 양감의 표현이 투박스러운 느낌을 주며, 간단한 옷주름만을 표현한 천의 역시 투박스런 기법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거의 사각형의 평면적인 얼굴은 눈이나 입 등에 미소를 표현하여 딱딱한 얼굴을 한결 부드럽게 해 주고 있다.


이 보살상은 고려시대의 지방화한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고려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의의가 자못 높은 편이라고 할수있다.


머리에는 두건같은것을 쓰고 있는듯이 보여서, 뒤쪽을 돌아보니 두건을 묶은듯한 매듭이 보이고, 그 위에 6각으로 된 갓 모양의 넙적한 돌을 올려 놓았다.


왜소한 어깨의 윤곽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금씩 넓어지지만 양감이 전혀없이 밋밋하여 마치 돌기둥 같다. 왼손은 몸에 붙인채 아래로 내리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돌지팡이같은 것을 잡고 있는데 양 발 사이까지 길게 내려오고 있다.


고려건국 후 태조의 숭불정책으로 전국에는 많은 사원과 거대한 탑, 불상이 조성 되었다. 불상의 중심지도 경주를 벗어나 지방 여러 곳에서 선종사찰이 세워짐과 동시에 지방호족들의 후원으로 불교미술도 지역적으로 발달하였다. 이로서 논산 관촉사 보살입상,부여 대조사 보살입상등 충청도 지역에서도 개성적이고 규모가 큰 대형불상들이 유행하였다. 즉 인간은 불상이 표현하는 불력에 의해 구제를 받는다고 생각하며, 절대귀의 감정의 대상으로 대작이 만들어진다. 돌이켜보면 당시는 불력에 의해서 구제를 받기위해 만들어진 소중한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선인들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유물들을 보존함에 있어서는, 종교와 이념을 떠나서 잘 지키고 보존하여 자손대대로 줄려줘야할 소중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유익한 정보라고 생각하시면, view on을 꾸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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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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