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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충절의 고장 충남 예산으로 역사기행을 떠나본다. 우리가 역사교과서에서 익히 배워서 알겠지만, 윤봉길의사는 상해 홍구공원에서 개최한 일제의 천장절 겸 전승기념 축하식장에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여 상해 거류 일본인 민단장과 사령관을 죽이고 수뇌급 수명에게 중상을 입힘으로서, 우리 한국인의 독립정신을 세계 만방에 과시한 분이다.

윤봉길의사(1908~1932)는 1908년 6월 21일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178번지, 이곳 도중도 고택에서 태어났다. 생가는 광현당이라 이름하였는데 남향으로 앉은 조그마한 집이며 성장가는 저한당이라 이름하였다. 11세때에는 덕산 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그이듬해 인 12세때 일제의 식민지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자퇴했다고 한다.

19세 나이에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했으며,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자 1930년 23세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예산은 윤봉길의사가 태어나 망명길에 오르기까지 농촌계몽과 애국정신을 고취한 곳으로, 4.29 의거와 애국 충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충의사가 있다. 사당과 기념관이 있는 본전지역과 육교를 건너면 있는 생가지역이 나눠져있으며, 이번에는 생가지역을 소개하고자한다.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생가지역 전체 조감도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매헌 윤봉길의사 상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윤봉길의사 의거 기념탑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광현당(출생해서 4세까지 살던곳)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광현당(출생해서 4세까지 살던곳)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광현당(출생해서 4세까지 살던곳)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광현당 입구 담장과 대문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대치천 도중도교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도중도 안내도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부흥원(야학당)

 윤봉길의사 생가지역 - 저한당(매헌의 성장가) 

이곳 충의사는 윤의사의 영정을 모신 본전지역과, 윤의사께서 태어나서 4세때까지 살던 생가(광현당)지역, 그리고 4세때 이사하여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인 23세때까지 살던 성장가(저한당)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성장가 지역에는 문맹퇴치 일환으로 야학당으로 이용하던 부흥원이있다.

우리민족은 유달리 외침을 많이 받다보니 외침에 항거하던 정의로운 위인들 이야기를 접할 기회도 많이 있다. 위인들 생가를 돌아보면 대부분 어렵게 살던 시절의 초가집이 다반사지만, 그들이 태어나서 자라온 환경을 보면서 잠시라도 위인들의 업적을 기려보고 그의 숨결을 느껴보기 위한 시간을 가지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윤봉길은 비록 25세의 짧은 생애를 마쳤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투사의 업적을 기리고,
역사의 현장을 잘 보존하여 후세에 널리 알리는 일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고난과 위기의 시대를 겪어왔으며, 이러한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고장에서 그분의 숨결과 민족사랑을 느껴보면 더욱 뜻 깊은 여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관련글보기 : 독립투사 윤봉길의사의 얼을 되새겨본 충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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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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