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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동암면 만덕리 11번지 월출산  남쪽에 만덕산 자락에 자리하고있다. 절의 본래 이름은 만덕산 백련사이고 조선 후기에 만덕사로 불리다가 근래 다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강진읍에서 완도간 지방도로를 따라 500m 쯤 가면 작은 다리 옆에 백련사, 다산초당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에서 좌회전을 하여 7km쯤 길을 따라 가면 백련사 입구에 다다른다.백련사에서 오솔길을 따라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인 다산초당이 있는데 찻길로는 3km 쯤 돌아간다. 백련사 앞 바다는 구강포 혹은 강진만이라 부르는데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고니, 혹부리오리, 큰기러기, 도요새 등 많은 철새들이 날아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고려시대에 중앙 소수의 귀족과 왕족들이 독점한 불교를 지방과 대중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불교계 제반 모순을 비판하고 개혁한 신앙결사가 바로 백련결사운동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백련사를 장엄하고 있는 동백꽃에 현혹되어 역대 선지식들이 결사한 불교사회개혁운동의 체취를 느끼지를 못하고 있는곳이다.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가 창건하였는데, 당시 사찰 이름은 만덕사라고 불렀다. 이후 고려 원묘국사가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는 불교적 대안을 마련하고, 대중적 기반의 침체된 불교 중흥을 위해 만덕사에 보현도량을 열어 수행교화체계를 세우고, 백련결사운동을 전개하면서 백련사로 사명을 바뀌었다.


만경루는 백련사 주출입 통로 정면에 있는 누각이다. 원래는 만경루 밑을 지나 대웅보전 앞마당으로 도달하는 누하 진입방식이었으나 지금은 누각 왼쪽에 난 계단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육화당의 육화란 석가모니가 교단의 화합과 대중 수행에 필요한 자세를 일깨우기 위에 6가지 화합하는 법을 말씀하신 6가지 발원을 말한다. 기존에 있는 요사채를 1995년에 확장 중수한 건물이다.
 
 

백련사 경내에 들어가는 집입로 역할을 하는 만경루 아랫쪽을 통과해서 돌계단을 오르면 대웅보전이 보인다.


대웅보전은 앞면 3칸 옆면3칸의 팔작지붕이며, 1702년에 중건되었다. 현판의 ‘대웅보전’ 글씨는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글씨인데 그가 1755년 진도로 유배된 이후 어느 때인가 이곳에 들러 쓴 듯하다.


육화당은 경사지를 이용하여 대웅전 마당에서 보면 1층이지만 누각 앞마당에서 보면 2층 건물이다. 1층은 식당, 찻집 등으로 사용하고, 2층은 객실로 쓰고 있다.
육화당 외에 요사 2동이 있다.
 


요사채 한 채는 육화당 뒤편에 있는데 ㄱ자형 평면의 건물이다. 다른 한 채는 종각 왼쪽에 있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삼성각은 대웅보전 오른쪽에 있는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내부에는 뒷벽에 붙여 일자형 불단을 조성하고 독성탱을 중심으로 칠성탱과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만경루’의 현판은 대웅보전의 현판과 마찬가지로 이광사가 썼고, 안에는 1817년(순조17) 응언스님이 지은 '만덕사고려팔국사각상량문'이 걸려 있다.


범종각 종신부의 꼭지에 섬약한 용뉴와 음통을 조성하고, 띠문을 돌려세웠다. 상대와 2줄의 하대에는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고 4개의 유곽과 그 아래에 스님상을 새겨 놓았다.


범종각의 오른쪽에 보이는 낡은 건물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체 건물이다.


명부전은 대웅보전 바로 왼쪽에 있으며, 내부에는 ㄷ자형 불단을 조성하고 지장상을 비롯하여 무독귀왕, 도명존자 및 시왕상과 판관, 녹사, 인왕상 그리고 사자상 등 지장보살의 권속을 봉안하였다.
 


범종각 부근에서 내려다보면 백련사 앞뜰의 동백나무숲과 멀리에 강진만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칠성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을 모신 전각으로 칠성은 자연재해를 주관하며, 자식을 원하는 민간적인 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어 여래로 승격된 분이다. 주존은 치성광여래이다.


응진전은 대웅보전 왼쪽 언덕 위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안에는 'ㄷ'자형 불단을 만들고 그 위에 상을 안치하였다. 절에서는 응진전으로 부르고 있으나 현판은 응진당으로 적혀 있다.



백련사 사적비는1681년(숙종 7)에 탄기 스님이 절의 사적이 오래되어 없어져 버릴 것을 염려하여 세웠다고 한다. 비문의 내용은 절의 위치와 연혁, 원묘국사의 백련결사, 원묘국사비와 사리탑 등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귀부는 목을 짧게 조각하고 긴 수염을 늘어뜨려 움츠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백련사를 답사하고 대웅보전의 좌측으로 돌아서 돌계단길을 내려서보면 백련사의 돌담장이 이색적이다.



이 밖에 사찰 주변에는 비자나무와 후박나무가 있고, 푸조나무와 함께 특히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이 우거져있어 사계절 모두 경관은 장관을 이룬다.


경사진 돌계단길을 내려서서 올려다본 육화당은 경사지를 이용하여 대웅전 마당에서 보면 1층이지만 누각 앞마당에서 보면 2층 건물이다.
 



 백련사를 품고 있는 만덕산은 차의 원산지로 다산이란 정약용의 호를 여기서 얻을 정도로 주변에 차나무들이 많았다는데, 아직도 백련사를 내려서서 다산초당 가는길에 거대한 차밭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이름있는 산자락에는 어디를 가더라도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은 불자들에게는 마음의 양식을 주는 곳이지만, 불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편하게 둘러보고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껴 볼 수 있는곳이다. 각 사찰들은 나름대로 뜻깊은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그곳에서 특징있는 몇가지라도 제대로 기억하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을것이다.

◈ 백련사 관람포인트 7 - 백련사를 들리면 이것만은 느껴보자.

1. 백련사를 품고 있는 전남 강진 만덕산은 차의 원산지며, 정약용의 호 다산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2. 만경루에서 바라보는 우거진 동백나무 숲사이로 남해바다 강진만을 조망하는 절경도 일품이다. 

3. 백련사 주변에 울창하게 우거진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동백꽃은 3월말 4월초에 절정을 이룬다.

4. 백련사의 부도들은 동백숲 안에 자리하고 있으니, 동백숲에서 선지식의 법문을 듣는 것도 좋은 수행이다.

5. 대웅보전과 만경루 편액은 조선후기 서예가 원교 이광사가 쓴 글씨로 그의 필체에 힘을 느껴보자.

6. 백련결사운동의 중심사찰인 백련사는 8명의 국사를 배출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8명의 대사를 나왔다한다.

7..백련사를 참배한다면 선지식들이 불교의 제반 모순을 개혁한,  백련결사운동의 체취를 다시한번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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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털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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