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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지역에는 크고 작은 미륵불상들이 여기저기 20여개나 산재하는데 전국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지역으로 알려져있다. 죽산리에서는 들어서면 매산리 태평미륵에서 멀지 않은곳에 죽주산성을 등지고 있는 죽산리 석불입상을 만날 수 있었다. 석불입상은 연꽃 문양의 대좌 위에 놓여 있는 높이 3.36m의 석조여래입상이다.
석불입상은 봉업사지와 죽산리 사지와 관련된것으로 본다. 보는 견해에 따라서는 죽산리 사지의 경우 두 개의 절터로 추정하여 석불입상과 그 옆의 석탑을 한 개의 사지로 보고, 3층석탑에 또 하나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봉업사는 언제 창건되고 언제 폐사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매곡리 폐사지' 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66년 경지정리작업시 출토된 유물에서 이곳이 봉업사였음을 말해주는 명문이 발견되어 비로소 봉업사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절의 명칭이 중요한 이유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하는 '고려 태조의 진영을 모셨던 비봉산 아래의 봉업사'가 바로 이곳임을 밝혀주는 것으로, 사찰의 중요성이 증명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은 봉업사터 당간지주와 5층석탑이 있는곳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아래 밭 가운데에 3층석탑이 있고, 석불입상이 대각선으로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으며 석불은 가장 위쪽에서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죽산리 석불입상은 죽주산성 아래 쓰러져 있던 것을 현재 이곳으로 옮겨와 세웠다고 한다.
죽산리 석불입상은 봉업사 당간지주가 있는곳에서 가깝지만, 매산리 태평미륵이 있는곳을 지나 울창한 노송이 우거진 농로길을 따라서 가면 끝지점에서 오른쪽 산 아래쪽에 죽주산성을 등지고 서있다.
죽산리 석불입상은 매곡리에서 시멘트포장농로 끝지점에서 비포장 농로를 따라서 100m 정도 들어가면, 산 아래 자그마한 용화사라는 사찰의 마당을 지나가면 솔밭아래 우뚝 서있는 석불입상이 보인다.
용화사는 자그마한 사찰로 석불입상과 관련은 없는듯 보이며, 마당에는 오층석탑이 서 있으나 문화재는 아니였다.
석불입상은 용화사 바로 옆에 철제 보호대 안쪽으로 12계단으로 된 돌계단을 올라서면, 은은하고 인자하게 미소짖는듯한 석불이 연꽃 문양의 대좌 위에 놓여 있는 높이 3.36m의 석조여래입상이 우뚝 서 있다.
둥근 대좌 위에 서 있는 불상은 민머리위에 지혜를 상징하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에는 돌출 된 눈두덩이와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 마멸이 심한 코, 도톰하고 작은 입 등이 조화를 이루며 온화한 인상을 준다. 두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다.
옷은 두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으로 두 어깨로부터 배 부분에 이르기까지 타원형의 옷주름이 촘촘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허리부분에서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하였으며 왼손은 자연스럽게 내려 허벅지에 대고 있다. 아래쪽에는 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복련이 조각된 원형대좌가 있다.
원형 연꽃좌에 직립한 이 불상은 풍문한 얼굴에 코는 마모가 심하지만 지긋한 눈과 작은 입매가 단정한 인상을 주며 소발의 머리에 큰 육계와 긴 귀가 특징적이다. 고려 초기에 유행한 지방의 불상 양식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대좌는 존상을 놓아두는 대로,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참선할 때 풀방석에 앉았던 것에서 유래하며, 연화좌 사자좌 하엽좌 생령좌 바위좌 등이 있다. 이곳에는 연화좌를 사용하고 있으나 나란히 2개가 배치되어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산6-2번지에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죽산리 석불입상의 좌측에는 작은 석탑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문화제로 지정된 내용은 없었다.
현재 매곡리 폐사지는 봉업사지 황량한 빈터에 5층석탑과 당간지주만이 서 있지만, 당시 봉업사의 그 당당한 위용에서 한 시절의 영광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논과 밭으로 변해버린 들판에 석탑만 동그마니 서있지만, 당시 마을 사람들은 석불과 삼층석탑을 기자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듯 하니, 곳곳이 기자신앙의 흔적인 셈이다.
석불입상은 봉업사지와 죽산리 사지와 관련된것으로 본다. 보는 견해에 따라서는 죽산리 사지의 경우 두 개의 절터로 추정하여 석불입상과 그 옆의 석탑을 한 개의 사지로 보고, 3층석탑에 또 하나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봉업사는 언제 창건되고 언제 폐사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매곡리 폐사지' 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66년 경지정리작업시 출토된 유물에서 이곳이 봉업사였음을 말해주는 명문이 발견되어 비로소 봉업사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절의 명칭이 중요한 이유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하는 '고려 태조의 진영을 모셨던 비봉산 아래의 봉업사'가 바로 이곳임을 밝혀주는 것으로, 사찰의 중요성이 증명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은 봉업사터 당간지주와 5층석탑이 있는곳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아래 밭 가운데에 3층석탑이 있고, 석불입상이 대각선으로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으며 석불은 가장 위쪽에서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죽산리 석불입상은 죽주산성 아래 쓰러져 있던 것을 현재 이곳으로 옮겨와 세웠다고 한다.
죽산리 석불입상은 봉업사 당간지주가 있는곳에서 가깝지만, 매산리 태평미륵이 있는곳을 지나 울창한 노송이 우거진 농로길을 따라서 가면 끝지점에서 오른쪽 산 아래쪽에 죽주산성을 등지고 서있다.
죽산리 석불입상은 매곡리에서 시멘트포장농로 끝지점에서 비포장 농로를 따라서 100m 정도 들어가면, 산 아래 자그마한 용화사라는 사찰의 마당을 지나가면 솔밭아래 우뚝 서있는 석불입상이 보인다.
용화사는 자그마한 사찰로 석불입상과 관련은 없는듯 보이며, 마당에는 오층석탑이 서 있으나 문화재는 아니였다.
석불입상은 용화사 바로 옆에 철제 보호대 안쪽으로 12계단으로 된 돌계단을 올라서면, 은은하고 인자하게 미소짖는듯한 석불이 연꽃 문양의 대좌 위에 놓여 있는 높이 3.36m의 석조여래입상이 우뚝 서 있다.
둥근 대좌 위에 서 있는 불상은 민머리위에 지혜를 상징하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에는 돌출 된 눈두덩이와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 마멸이 심한 코, 도톰하고 작은 입 등이 조화를 이루며 온화한 인상을 준다. 두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다.
옷은 두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으로 두 어깨로부터 배 부분에 이르기까지 타원형의 옷주름이 촘촘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허리부분에서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하였으며 왼손은 자연스럽게 내려 허벅지에 대고 있다. 아래쪽에는 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복련이 조각된 원형대좌가 있다.
원형 연꽃좌에 직립한 이 불상은 풍문한 얼굴에 코는 마모가 심하지만 지긋한 눈과 작은 입매가 단정한 인상을 주며 소발의 머리에 큰 육계와 긴 귀가 특징적이다. 고려 초기에 유행한 지방의 불상 양식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대좌는 존상을 놓아두는 대로,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참선할 때 풀방석에 앉았던 것에서 유래하며, 연화좌 사자좌 하엽좌 생령좌 바위좌 등이 있다. 이곳에는 연화좌를 사용하고 있으나 나란히 2개가 배치되어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산6-2번지에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죽산리 석불입상의 좌측에는 작은 석탑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문화제로 지정된 내용은 없었다.
현재 매곡리 폐사지는 봉업사지 황량한 빈터에 5층석탑과 당간지주만이 서 있지만, 당시 봉업사의 그 당당한 위용에서 한 시절의 영광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논과 밭으로 변해버린 들판에 석탑만 동그마니 서있지만, 당시 마을 사람들은 석불과 삼층석탑을 기자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듯 하니, 곳곳이 기자신앙의 흔적인 셈이다.
이 지역에 특이하게 미륵이 많은 이유는? 삼남지역에서 한양가는 길목이던 안성은 예로부터 고을이 번성했기 때문인듯하다. 그리고 이 시대에 지배층의 수탈이나 오랜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민초들의 자기구원의 한 수단으로, 인간의 연약한 마음을 불심에 의지하려는 미륵신앙이 더 크고 깊게 나타났던 것일 것이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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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둑 교화시킨 혜소국사와 칠장사
:죽주산성의 시련과, 송문주장군의 설화
:천년세월 미소짓는, 매산리 석불입상
:봉업사지 당간지주와 죽산리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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